황구
두 달
두 달이었다. 시작하는 날에 이미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는 시간이었다. 맡은 개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구조된 뒤 비행기를 타고 내게 온, 태어난 지 세 달쯤 된 강아지였다.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월이었고, 아직 애기 티가 꽤 남아 있는데도 진돗개 특유의 단단한 기운 같은 것은 벌써 있었다. 두 달이 지나면 위탁처라는 곳으로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다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덩치 큰 황구 진돗개를 다시 임보하겠다는 사람도 입양하겠다는 사람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말했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위탁처는 잠깐 거쳐 가는 자리가 아니라 이 개가 아주 오래 있게 될 자리였다. 위탁처에는 개가 많고, 그 많은 개 틈에서 혼자 늘어져 쉬는 시간이나 매일의 산책이나 좋은 사료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을 모르고 정한 일이 아니었다. 구조자분도 나도 다 알면서 그 날짜를 잡았다. 남아 있는 선택지가 길바닥과 보호소의 끝뿐인 개한테는, 그곳이 가장 나은 자리였다. 사람의 집에서 개 한 마리로 사는 일은 그 두 달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알면서 그 두 달을 지냈다.
그러니까 그때 내 앞에 놓여 있던 것은 애틋함보다 체크리스트에 가까웠다. 챙겨야 할 것들, 맞춰야 할 것들, 그 시간 안에 정리해야 할 것들. 팥떡이는 원래 지나가는 관계여야 했고, 애초에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망가진 것
나는 통제욕이 강한 사람이다. 후회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싫어한다기보다 두려워한다는 말이 더 맞다. 인간관계든 물건과의 관계든 무언가가 조금씩 망가지는 것을 잘 못 견딘다. 망가진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것도 싫고 흐트러지는 것을 보면서 버티는 것도 싫어서, 차라리 먼저 잘라내고 끊어내고 새로 시작하는 쪽을 더 편하게 느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끊어진 관계가 지금은 훨씬 더 많다.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다.
이상한 것은 그래서인지 이미 어딘가 망가진 물건을 좋아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미 조금 망가져 있거나, 이미 내가 한 번 고쳐본 것들. 그런 것을 쓸 때 이상하게 마음이 놓일 때가 있다. 더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며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손
아직 어린 팥떡이가 맛볼 수 있는 것은 다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토끼부터 닭, 양까지 고기란 고기는 부위를 바꾸어 가며 주었다. 그릇에 부으면 몇 분이면 끝나는 밥을 손으로 주면 한참이 걸렸고, 나는 그 한참이 필요해서 자꾸 손으로 주었다. 손바닥 위의 것을 개는 와구와구 받아먹었다. 산책은 하루에 다섯 번에서 여덟 번씩 나갔다. 그 나이의 강아지에게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거기 가면 지금처럼 나가지 못할 날들의 몫이었다. 그 두 달 동안 나는 약속을 잡지 않았고, 팥떡이와 나가는 일이 아니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하루 24시간을 붙어 있었다.
접종이 끝나 가고 서로 낯이 익고 개가 이 집의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에는 남은 날이 얼마 없었다. 다른 개들 틈에서 마음껏 뛰게 해주고 싶었던 반려견 놀이터에는 보내기 두세 주 전에야 처음 갈 수 있었는데, 차만 타면 토하는 개를 그래도 매번 태워서 갔다. 그때는 그게 잘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나는 남은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 며칠이 남았는지 알면서, 그 안에 해줄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더 밀어 넣고 있었다.
정
그러는 동안 나는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호떡이 때문이었다. 호떡이는 그 사람의 개였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고, 보고 싶으면 데리고 나와 같이 여행도 다녔다. 나한테는 내 개와 같았다. 팥떡이가 온 뒤로는 호떡이를 자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달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미안함은 없었다. 죄책감도, 그것을 죄책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면, 없었다. 길에 있었을 개를 두 달 돕는 것뿐이고 빚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두 달 잘 지내다가 잘 가기를 바랐다.
셋이 함께 있는 날에는 팥떡이한테 일부러 모질게 굴었다. 호떡이가 내가 다른 개를 데려온 거라고 여기고 서운해하지 않기를 바랐고, 곧 갈 개가 나한테 너무 깊이 정들지 않기를 바랐고, 위탁처로 가는 날 자기가 버려진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바라는 것이 많은 두 달이었다.
수술
위탁시설로 넘어가려면 중성화까지 마쳐야 했다. 그래서 팥떡이는 생후 5개월 무렵에 중성화를 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 이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넓은 선택지 안에서 고른 것이 아니라 정해진 일정과 조건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그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고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은 내게 죄책감의 문제라기보다 몸의 시간과 사람 시스템의 시간이 어긋나는 문제로 남는다.
다만 그 일을 지나오면서 하나는 알게 됐다. 후회를 줄이고 싶다고 해서 후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통제하고 싶어할수록 이미 지나간 선택은 더 오래 남기도 한다는 것.
일주일
보내기로 한 날을 일주일 앞두고 그 사람과의 일들로 나는 호떡이를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내가 팥떡이를 보내려는 이유가 호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이유가 사라진 지금도 보낼 것인지를 먼저 물어왔다. 보낼 이유는 호떡이였는데 호떡이가 없어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정해진 날짜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고민했다. 고민했다는 말 말고는 그 일주일에 대해 지금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하루
정해진 날짜가 왔고, 나는 팥떡이를 차에 태우고 용인에서 김포까지 갔다. 두 달 동안 한 모든 것이 그 하루를 위한 준비였다. 고기란 고기를 다 먹인 것도, 하루 다섯 번에서 여덟 번을 나간 것도, 약속을 다 지운 것도, 셋이 있는 날 일부러 모질게 군 것도, 정들지 않게, 버려졌다고 느끼지 않게 미리 해둔 그 모든 것이 개를 넘겨주고 혼자 돌아오는 하루를 위한 준비였다. 보낼 이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갔다. 두 달 전에 정한 대로, 계산한 대로, 빚진 것 없는 사람으로 끝까지 가려고 갔다.
넘겨주지 못했다. 두 달의 계산이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계획은 개를 두고 혼자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나는 팥떡이를 다시 차에 태웠고, 갔던 길을 그대로, 차 안에 개가 있는 채로 돌아왔다. 그날 내가 한 결정에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보낼 이유는 두 달 치가 쌓여 있었고, 데려올 이유는 하나도 없었는데, 나는 데려왔다.
나는 원래 끝낼 수 있는 관계는 빨리 끝내는 쪽이었고, 정이 들수록 더 빨리 잘라내고 싶어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결심해서 붙잡은 관계라기보다, 내가 끝내 잘라내지 못해서 남아버린 관계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빚진 것이 없다고 두 달 내내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매일 울었다.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두 달 내내 믿었는데, 지금 보면 그 두 달 동안 내가 한 것은 전부 보내지 못하게 되는 준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