狗狗狗

팥팥팥© 2026 狗狗狗

가고 싶은 데는 늘 여기가 아니었다

나한테 여행은 떠나는 날 시작되는 게 아니라, 다음엔 어디로 어떻게 떠나볼까 생각하기 시작하는 그 밤부터다. 요즘도 밤이면 팥떡이랑 어디를 갈 수 있을지 한참 생각하곤 하는데, 떠오르는 곳이 하나가 아니라 규모가 다 제각각이다.

작년 겨울에 텐트를 하나 사놓고 정작 한 번밖에 못 썼다. 몇 년 전만 해도 틈만 나면 밖에서 자고 다녔는데, 같이 다니던 사람이 없어진 뒤로 발길이 뜸해졌고 한동안은 그걸 핑계로 삼기 좋았다.

이제는 그 핑계를 안 쓰기로 했다.

같이 갈 사람이 있으면 그것대로 좋지만, 마침 없다는 이유로 겨울을 또 통째로 넘기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나랑 팥떡이 둘이면 된다.

팥떡이는 사람도 개도 많은 데선 좀처럼 편하질 못해서, 우리는 늘 사람 없는 데만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렇게 빈 데를 고르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건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그 빈 데서 둘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였다. 이미 다녀온 하루가 하나 있고, 이번 겨울에 벼르는 데가 있고, 아직 머릿속에만 있는 한 달짜리가 하나 있는데, 규모는 달라도 셋 다 같은 이야기다.

혼자였으면 4시간이면 됐을 길이었다

팥떡이랑은 산에 가도 사람 없는 새벽 서너 시에 올라가 붐비기 전에 내려오곤 했다. 그런데 한번은 일부러 반대로, 제일 붐빌 토요일 오전에 관악산에 갔다.

올라갈 때 사람만 나타나면 짖고 달려들던 팥떡이가, 내려올 때는 사람만 보이면 먼저 반가워했다.

완전히 지쳐 늘어진 팥떡이한테, 조금 전까지 자기가 짖어대던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물과 수박을 나눠줬다. 그렇게 얻어먹고 나서는 누가 비닐봉지를 바스락거리거나 물통을 꺼낼 때마다 팥떡이가 먼저 달려가 들이댔다. 사람 많을까 봐 걱정하며 간 날이었는데, 정작 팥떡이를 끝까지 걷게 한 게 그 사람들이었다.

그날 좋았던 건 팥떡이가 달라졌다는 것보다 하루가 뜻밖으로 길어졌다는 데 있었다. 혼자였으면 4시간이면 됐을 길을, 사진을 찍고 계곡물에 몇 번씩 들어가 쉬며 5시간 45분에 걸쳐 내려왔다. 빨리 안 내려오고 자꾸 멈춘 그 느림이 그날의 즐거움이었다.

하루를 서둘러 해치우지 않고 이렇게 늘어뜨려 두는 게 팥떡이랑 다니는 재미라는 걸, 그날 알았다. 그 뒤로는 어디를 가든 이 느림을 챙기게 됐다. 다음엔 아예 비가 많이 오는 날을 골라 다시 올라갈 생각인데, 그런 날 관악산엔 사람이 없을 거다.

둘이 하룻밤 자고 오는 정도는 해볼 만해졌다

팥떡이가 어릴 때는 이런 데 데려가는 게 부담이었다. 통제가 잘 안 됐고, 낯선 데서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달라서, 여전히 완벽하진 않아도 둘이 하룻밤 자고 오는 정도는 해볼 만해졌다.

갈 곳은 벌써 정해 두다시피 했다. 선자령에 올라가 바람을 맞으며 텐트를 치고, 강원도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바닷가에서도 한 번 자고, 속초와 고성 사이 화암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성인대에 서서 눈 얹힌 울산바위를 정면으로 볼 생각이다. 성인대는 신선대라고도 부르는 자리인데, 예전부터 좋아하던 곳이라 이번에는 눈 덮인 울산바위를 꼭 보고 싶다.

여러 번 나갈 거라 매번 같은 강도로 갈 필요는 없어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눠 생각하고 있다. 둘 다 팥떡이랑 같이 간다.

하나는 차를 트레일 입구에 바짝 대고 그 근처에 텐트를 치는 방식이다. 차가 가까우면 장비를 넉넉히 챙길 수 있어서 좋고, 정말 추운 밤이면 팥떡이를 따뜻한 차 안으로 들일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아예 텐트를 접고 차 안에서 자는 날도 있는데, 밖은 영하 십몇 도인데 안은 따뜻하고 그 안에 팥떡이랑 나뿐인 그 아늑함이 나는 좋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차를 멀찍이 두고 능선까지 짐을 지고 올라가는 방식이다. 무겁고 춥고 지치지만, 겨울 백패킹의 진짜 재미는 사실 그 고생에 있어서 힘든 만큼 나중까지 더 오래 가는 재미다.

겨울에 개를 데리고 다닐 때 제일 중요한 건 결국 하나인데, 팥떡이가 추워하면 곧장 따뜻한 데로 데려갈 수 있느냐다. 그래서 나한테 차는 처음부터 돌아갈 자리였다. 혼자 가는 백패킹의 고독도 좋지만, 팥떡이랑은 최대한 많이 같이 다니고 싶다.

팥떡이는 내 친구니까.

떨림이 멎는 순간이 나빠진 신호다

겨울밤을 좌우하는 건 얼마나 두껍게 입었느냐가 아니라, 침낭과 바닥과 습기 세 가지다. 침낭은 컴포트 등급으로 고르고, 리미트 등급은 계획에 넣지 않는다. 리미트는 편하게 자는 온도가 아니라 그냥 버티는 온도라서다. 바닥이 사실 더 중요한데, 아무리 좋은 침낭이라도 등 밑으로 열이 빠지면 소용이 없으니 눈이나 언 땅에서는 R값 높은 매트 아래에 폼매트를 한 장 더 깐다. 나머지는 습기다. 겨울에 위험한 건 추위가 아니라 젖는 거고 다운은 젖으면 부풀지 않아서, 걸을 땐 일부러 좀 춥게 가다가 멈추면 바로 패딩을 껴입고, 텐트도 밤새 입김이 성에로 얼어붙지 않게 바람이 지날 틈을 두고 친다. 적어 놓으면 뻔한 얘긴데, 이 셋을 동시에 안 놓치는 게 결국 전부고 그건 습관에 가깝다.

팥떡이는 걱정한 것보다 잘 버텼다. 진돗개는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산과 들을 오가며 살아남은 이중모 자연종이라, 이런 날씨는 웬만하면 몸이 알아서 견딘다. 이상한 건, 평소엔 들어가라고 해도 안 들어가면서 진짜 추운 날 텐트 안에서는 알아서 침낭으로 파고들어 웅크린 채 안 움직이고 잘 잔다는 거다. 그래도 밤새 마음을 놓지는 않는다. 마른 개가 오래 가만히 있으면 그만큼 열을 뺏기기 때문이다.

챙기는 것보다 어려운 게 신호를 읽는 거라, 저체온은 사람이든 개든 단계가 비슷하게 간다.

단계사람내가 살피는 팥떡이 신호
초기심하게 떨림, 손끝 둔해짐, 말이 어눌해짐떨림, 웅크림, 발 들기, 귀와 발끝이 참
중기떨림이 멎음, 판단이 흐려짐, 비틀거림떨림이 멎음, 무기력, 잇몸이 창백하거나 푸르스름
위험의식이 흐려짐, 맥박과 호흡이 느려짐반응이 둔해짐, 호흡이 얕아짐

사람이든 개든 떨림이 멎는 순간이 나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나빠진 신호다. 사람은 그때쯤 덥다고 옷을 벗기도 하고, 팥떡이는 말을 못 하니 잇몸 색과 반응 속도로 본다. 그래서 나한테 팥떡이 안전장치는 장비가 아니라 그 관찰이고, 이상하다 싶으면 사진이고 뭐고 없이 곧장 따뜻한 곳으로 데려간다.

밤을 살리는 건 큰 장비만이 아니라 작은 것들이기도 한데, 지난겨울에 아쉬웠던 게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핫팩 몇 개를 손끝과 발치에 넣어 두면 침낭 안이 훨씬 빨리 데워지고, 끓인 물을 새지 않는 통에 담아 발치에 두면 한동안 훈훈하다. 스토브는 가스 대신 MSR 가솔린을 쓰는데, 가스 캐니스터는 한겨울에 압력이 떨어져 화력이 확 주는 반면 가솔린은 영하에서도 그대로다. 배터리는 추위에 약해서 밖에 두면 훨씬 빨리 닳으니, 배터리든 카메라든 제습제와 함께 케이스에 넣어 두거나 아예 침낭 안에 넣고 잔다.

영하 17도에서 장갑을 벗었다

고생해서 다녀온 하루에서 나중에 다시 꺼내 보게 되는 건 결국 그날 담아 온 것들이다. 그래서 나한테 카메라는 늘 제일 무거운 짐이면서 제일 중요한 짐이었다. 능선까지 지고 올라가는 무게의 상당 부분이 카메라와 렌즈고, 충격은 케이스에 넣어 다니니 걱정하지 않지만 추위는 다른 문제다. 장갑을 낀 채로는 버튼이 잘 안 눌리고, 벗으면 손이 금방 언다. 지난겨울 영하 17도에서 잠깐 조작하려고 장갑을 벗었다가, 그 짧은 새에 손가락이 타 들어가는 것 같은 통증이 왔고 다시 장갑을 껴도 꽤 오래 갔다. 벗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는 장갑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그것 때문에 촬영을 멈추지는 않는다. 무겁고 추운 걸 다 감수하고 올라가면, 팥떡이랑 보낸 하루가 사진 한 장에 제대로 담기는 날이 있다. 그거 하나면 그날은 됐다 싶어서, 손이 얼어도 몇 컷을 더 찍는다.

그래서 촬영은 떠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된다. 산 위에서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으니, 배터리를 몇 개 챙길지 렌즈와 필터는 뭘 가져갈지 어떤 그림을 어디서 담을지 미리 정해 둔다. 이 계획을 세우는 데 짐 싸는 것만큼 시간이 들고, 사실 그 시간이 제일 재밌다.

거기엔 개가 한 발도 들일 수 없었다

머릿속에만 있는 한 달짜리 여행은 원래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청두를 거점으로 쓰촨과 윈난을 돌고, 특히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공가산에 가보고 싶었다. 공가산은 쓰촨에서 제일 높은 7556미터 봉우리라, 촉산지왕, 그러니까 촉 지방 산의 왕이라고 불리는 산이다. 거기서 즈메이야커우라는 4500미터 전망대에 올라가면 해 질 무렵 봉우리가 통째로 금빛으로 물드는 걸 볼 수 있고, 그 아래로 구름이 바다처럼 깔린다. 나는 그런 걸 오래 보고 있는 사람이라, 그 하나만으로도 갈 이유가 됐다.

공가산 기슭에는 공가사라는 절이 있다. 600년쯤 된 티베트 불교 사원이고, 순례하는 사람들이 산을 도는 길목의 성지다. 나는 이렇게 유명하고 오래된 절에 조용히 한참 앉아 있는 걸 찾아서 다니는데,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고 그런 데 앉아 있으면 뭔가 채워지는 게 있어서다. 그러다 다시 내려와 청두 시내를 팥떡이랑 그냥 걷는 것까지가, 내가 떠올린 중국이었다.

그래서 팥떡이랑 같이 가는 것부터 알아봤는데, 알아볼수록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었다. 서류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이크로칩도 광견병 항체검사도 이미 받아둔 게 있어서 검역은 넘을 만했다. 걸리는 건 전부 도착한 다음이었다. 청두 도심은 어깨높이 65cm가 넘는 개를 못 기르게 돼 있어서, 팥떡이가 거기 걸리는지부터 재봐야 한다. 고원 마을에는 소와 양을 지키는 티베트 마스티프가 풀려 있어서 타견반응이 있는 팥떡이한테는 위험하다. 그리고 공가산 일대는 자연보호구라 개가 아예 못 들어간다.

그중에서 제일 아까운 건 나마봉이었다. 공가산 자락의 5천 미터급 봉우리인데, 나 혼자서라면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팥떡이와 함께라면 봉우리를 밟겠다는 게 아니라 갈 수 있는 데까지만 팥떡이랑 걸어 올라가 보고 싶었던 건데, 그 길부터가 개는 못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방향을 콜로라도 로드트립으로 돌렸다.

미국 서부는 팥떡이가 오기 한참 전에 여러 번 다녔다. 캘리포니아와 유타, 애리조나, 데스밸리를 돌면서, 국립공원보다는 차를 세우고 캠핑할 수 있는 국유림을 좋아했다. 그때는 팥떡이가 없었다. 이번엔 그 길을 팥떡이랑 다시 가고 싶은데, 미국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결국 차다. 스바루 아웃백 같은 차를 한 달쯤 빌려서, 도시에서 사막으로 넘어갔다가 숲과 산을 지나 강이며 바다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풍경을 갈아타며 드나드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국 여행이다.

팥떡이한테 차는 이미 좋은 일이 생기기 직전의 자리다. 새벽에 차를 타고 두세 시간을 달려 산에 갔다가, 내려와 물가에서 쉬고 다시 차로 돌아오는 하루를 이미 여러 번 해봤다. 아침에 알람 소리가 나면 팥떡이가 엉덩이를 흔들며 좋아하는데, 차에 타는 것도 그 다음에 늘 좋은 게 왔으니까 좋은 신호가 됐다. 그래서 콜로라도의 한 달은 팥떡이한테 낯선 모험이라기보다, 이미 아는 제일 좋은 하루가 길게 이어지는 것에 가깝다.

다니는 방식도 팥떡이한테 맞춘다. 지도를 켜고 계획해둔 일정대로 매일매일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고, 도착해선 내려서 새로운 곳을 둘러보고, 쉬고, 논다. 평소에는 아침 산책만 끝나면 내가 출근해서 저녁까지 없다가, 거기서는 종일 같이 있다. 국내에서 돌아갈 피난처였던 차가, 미국에서는 굴러다니는 집이자 여행 그 자체가 되는 셈이다.

콜로라도가 높은 데긴 해도, 로드트립이라 고도는 일주일 넘게 이동하며 조금씩 올라간다. 낮은 데서 며칠씩 자며 몸이 알아서 적응하니까, 4천 미터에 갈 때쯤이면 팥떡이도 어느 정도 익어 있을 거다. 다만 큰 산에 올라가는 날은 사람도 숨이 차는 높이라 팥떡이도 힘들고, 그런 날 다음은 아무것도 안 하는 날로 둔다.

코를 박고 걷는 산책이 거기서는 매일이 된다

개는 그 산이 얼마나 예쁜지를 모른다. 내가 눈 덮인 설산을 보러 가도, 팥떡이한테 그건 그냥 하얗고 큰 무언가다. 쌓인 눈조차 풍경이 아니라 코를 박고 물어뜯고 파보는 것이라, 팥떡이한테 새로운 곳은 보이는 게 아니라 냄새로 들어온다. 언 흙, 눈 밑에 눌린 풀, 눈이 눌린 채 녹아 있는 자리. 그런 자리는 밤사이 큰 짐승이 누웠다 간 데일 거고, 나무 밑동마다 코요테가 표시를 남겨뒀을 거다. 토끼가 지나간 자국은 능선까지 이어지고, 나무 밑에는 다람쥐가 까먹은 솔방울 껍질이 쌓여 있을 거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발끝마다 새로 깔려 있을 거다.

한국에서 산책할 때 팥떡이 코에 걸리는 정보는 대개 다른 개와 사람인데, 그 냄새의 주인은 곧 모퉁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다. 거기서는 그게 다르다. 코요테가 나무 밑동마다 표시를 남겨두고 갔어도 정작 그 코요테를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냄새는 잔뜩 있는데 그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산이라, 머리를 들거나 줄이 팽팽해질 일 없이 코만 박고 걷는 산책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매일이 될 수 있다. 다른 개를 보면 나를 보게 하려고 오래 연습해 왔는데, 볼 개가 없는 곳이라면 그 연습이 닿으려던 상태가 처음부터 그냥 주어진다.

그러니까 콜로라도가 팥떡이한테 좋을 것이란 건 거기가 예뻐서가 아니라, 매일 코로 읽을 게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것이라서다. 내가 설산을 보며 감탄하는 동안 팥떡이는 냄새를 맡느라 고개도 안 들 거라, 같은 산에 서 있어도 둘이 받아 가는 게 완전히 다르다.

열 시간 동안 나한테 올 수조차 없다

좋은 얘기만 할 수는 없다. 팥떡이가 진짜로 힘든 날이 이 여행 안에 있다. 차가 그렇게 좋은 것과 정반대인 게 하나 있는데, 큰 개는 기내에 못 타서 가고 오는 비행 내내 열 시간 넘게 화물칸에 있어야 한다는 거다. 팥떡이는 무서울 때 나한테 오는 개가 아니다. 다리를 못 건너겠거나 천둥이 치면 나한테 붙는 게 아니라 혼자 구석으로 가서 떤다. 화물칸은 그런 팥떡이가 나한테 올 수조차 없는 곳이고, 열 시간 넘게 어두운 데서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버텨야 한다.

내가 찾아본 것 — 개를 데리고 미국 가는 절차
마이크로칩과 광견병 항체검사, 미국이 요구하는 온라인 신고서 정도면 되고, 항체검사는 한국에서 미리 받아두면 2년을 쓰니까 돌아올 때까지 그걸로 된다. 중국과 달리 격리도 없다. 다만 이런 검역 규정은 자주 바뀌어서, 실제로 떠나기 전에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

서류는 생각보다 넘을 만하지만, 문제는 서류가 아니라 그 열 시간이다. 내가 대신 져줄 수 없는 고생이라는 게 제일 걸린다. 그나마 추울 때 가는 게 하나는 나은데, 여름엔 더위 탓에 항공사가 화물칸에 개를 아예 안 실어주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켄넬을 몇 주 전부터 집에 두고 자기 굴처럼 만들어놓는 것 정도라, 나머지 날들이 이 이틀을 감수할 만큼 좋을지를 내가 저울에 올려야 한다.

차를 세우고 앉기까지는 몇 분이면 된다

이 여행에서 낮보다 밤이 더 자주 생각나는데, 그 밤을 나는 이미 안다. 지난겨울 강원도에서 산을 내려와 아무도 없는 데 차를 세우고, 패딩을 입고 밖으로 나와 앉기까지는 몇 분이면 됐다. 그런데 정작 내가 제일 오래 떠올리는 건 그렇게 앉아 있던 한두 시간이다.

입에서 김이 나고, 눈을 밟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다. 팥떡이는 차에서 내리면 먼저 코를 드는데, 낮에 맡던 냄새가 밤이 되면 또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 땅에 코를 대고, 눈을 한 입 물어보고, 뭔가 지나간 자리에서 한참을 멈춰 있다가, 추워지면 내 옆에 와서 붙거나 원래 그러듯 알아서 차 안 침낭으로 파고든다. 나는 그냥 앉아서 눈 덮인 능선을 본다. 하늘에 별이 많다.

다만 그 밤에도 나는 옆 텐트에서 나는 소리나 지나가는 사람, 팥떡이가 누구한테 짖지는 않을까 하는 것까지 늘 뭔가를 신경 쓰고 있었다. 콜로라도에서 내가 바라는 건 거기서 그 신경 쓸 것들만 빠진 밤이다. 그냥 추운 데 둘이 나와 앉아 각자 자기가 좋은 걸 하는데, 나는 능선을 보고 팥떡이는 냄새를 맡는다.

이런 밤이 왜 좋은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거기서는 남는 게 몇 개 안 된다. 추위랑 눈이랑 바람이랑 어둠, 그리고 팥떡이랑 나. 그 밤엔 여기가 콜로라도인지 강원도인지도 상관이 없어지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 데 둘이 나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아무것도 없음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낮에 아무리 멀리 다녀도, 나중에 자꾸 생각나는 건 대단할 것도 없는 이 한두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추운 밤에 팥떡이랑 나란히 앉아 각자 다른 걸 하고 있는 그 시간이, 이 여행에서 내가 제일 갖고 싶은 거다.

나는 그 어디를 내 눈으로만 보고 있었다

처음에 이 여행이 걸렸던 건 내 욕심 같아서였다. 아름다운 데는 나만 아름답고, 팥떡이는 그냥 나 때문에 열 시간짜리 화물칸에 실려 끌려다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팥떡이 눈으로 하나씩 세어보니 달랐다. 냄새가 전부 처음인 곳, 다른 개가 없는 곳, 내가 하루 종일 옆에 있는 곳. 팥떡이한테 좋은 하루의 조건을 적어놓고 보면, 조용하고 추운 콜로라도의 겨울 산이 꽤 정확히 거기 들어맞는다. 내가 아름다워서 가고 싶은 이유와 팥떡이한테 편한 이유가, 사람이 잘 안 가는 조용한 자연이라는 같은 데서 나온다. 관악산에서 사람이 없어야 편했던 것도, 강원도 빈 능선을 자꾸 찾아다닌 것도, 돌아보면 결국 같은 이유였다.

지난번엔 팥떡이한테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적었는데, 지금은 그게 틀렸다고 생각한다. 팥떡이한테도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했다. 다만 그 어디를 내 눈에 보이는 걸로만 따지고 있었을 뿐이다.

언제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그 추운 데 둘이 나와 앉아 있는 한두 시간은 자꾸 생각하게 된다. 막상 도착하면 눈밭에서 제일 신나는 건 팥떡이일지도 모른다.

이걸 다 적고 나서야 딴생각이 하나 들었다. 가고 싶은 데는 늘 여기가 아니었다. 개를 키우기 전에는 해마다 한두 번 어딘가로 떠나는 걸로 버텼는데, 그게 여행이라기보다 지금에서 잠깐 빠져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돌아보면 이 콜로라도도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 아닌 어딘가에 더 좋은 게 있을 거라 믿고, 그 언젠가를 향해 오늘을 자꾸 미뤄두는 거다.

팥떡이를 키우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내가 내 현실에서 예전만큼 도망치지 않게 됐다는 거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엉덩이를 흔드는 걸 보려고 일어나고, 출근 전 산책은 최대한 늦게까지 끌고, 하루 중에 제일 기다리는 건 퇴근하고 문을 여는 순간이다. 대단할 것 없이 매일 있는 것들인데, 나는 이런 걸 옆에 두고도 자꾸 여기 아닌 데를 계획하고 있었다.

눈 덮인 콜로라도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한 것도, 실은 팥떡이랑 그 아무것도 없는 밤을 한 달 내내 이어 붙이고 싶었던 거지, 그게 꼭 그 먼 데라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밤이라면 강원도 빈 능선에도 있고, 어쩌면 오늘 저녁 산책에도 절반쯤은 이미 있다.

그렇다고 내일 또 먼 데를 안 떠올리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아마 또 어딘가 대단한 데를 갈망할 거고, 또 한참을 헤아릴 거다. 다만 이번엔 그러다 한 번씩, 발치에서 자는 팥떡이를 더 오래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