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대
생일
생일은 그냥 지나갔다. 아침에 팥떡이 산책을 평소처럼 다녀왔고, 출근해서 평소처럼 일했고, 점심도 회사에서 먹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일부러 피한 것도 아니었다. 케이크도 사지 않았다.
나는 원래 그런 날을 크게 챙기지 않는다. 생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런 날에는 하루가 평소보다 더 괜찮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서다. 좋은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저녁쯤에는 오늘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뭔가 빠진 하루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케이크도 잘 안 사고, 계획도 크게 안 잡고, 좋아하는 음식 먹고 조용히 지나가면 됐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 생일도 딱 그 정도로 지나갔다.
올해는 아직 팥떡이랑 특별한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멀리 계곡을 다녀오지도 못했고, 백패킹도 아직 못 갔고, 산에 자주 가지도 못했다. 작년에 비하면 특별하다고 부를 만한 시간이 훨씬 적었다. 그래서 아쉬워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작년
작년에는 시간이 많았다. 계곡도 갔고, 반려견 놀이터도 거의 매일 갔고, 백패킹도 갔고, 등산도 자주 갔다. 팥떡이는 아직 어렸고, 나는 하루 대부분을 팥떡이 옆에 있을 수 있었다. 퍼피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때 옆에 있어줄 수 있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일이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그렇게 많이 놀러다니면서도 어딜 한 번 가려고 할 때마다 심리적인 부담이 있었다. 팥떡이는 지금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쳤고, 그냥 활발한 정도가 아니라 산책할 때도 계속 날뛰고 내가 꼭 붙잡고 있지 않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였다. 텐트를 칠 때도 한 손으로 줄을 잡고 치는 식이었고, 계곡에 가도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게 계속 봐야 했고, 가서 쉬는 시간도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같이 놀러 간다는 말은 맞았지만 그때는 팥떡이가 노는 것을 내가 따라다니며 케어하는 느낌이 더 컸다.
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매년 설악산에 갔고, 공룡능선이나 대청봉 같은 긴 산행을 좋아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14시간 넘게 걷고, 이동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이상이 통째로 들어가는 산행이었다. 몸은 힘든데 그 힘든 시간이 이상하게 나한테 필요했다. 계속 걷다 보면 머릿속에서 붙잡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남는 것은 발을 어디에 둘지, 물을 언제 마실지, 숨이 얼마나 가쁜지, 다음 오르막을 어떤 속도로 넘을지 같은 것들이다. 몸이 힘들어질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작년에는 설악산에 가지 못했다. 팥떡이가 생겼고, 팥떡이를 두고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하루 이상을 비운다는 것이 그냥 일정 하나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봐줄 수 있는지, 팥떡이가 괜찮을지,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지가 같이 걸렸다.
탈출
개를 키우기 전에는 매년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내게 꽤 큰 일이었다. 쉬러 가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도피에 가까웠다. 나는 그 해의 대부분을 1년에 한 번 있을 여행을 기다리며 버티는 식으로 살았다. 실제로 떠나는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이나 이주 정도였는데, 그 시간이 있으면 나머지 시간이 조금 견딜 만해졌다. 여행을 가지 않는 동안에도 어디로 갈지, 가면 뭘 할지, 뭘 먹고 무엇을 보게 될지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어떤 해에는 여행만큼이나 여행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좋았다.
팥떡이를 임시보호하다가 결국 내가 키우게 됐을 때 다른 것은 아쉽거나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생활 패턴이 바뀌는 것도 괜찮았고, 돈이 더 드는 것도 감수할 만했고, 하루의 구조가 달라지는 것도 별문제가 아니었다. 유일하게 이제 여행을 다니기 쉽지 않아졌다는 것만 한동안 꽤 크게 걸렸다.
팥떡이를 두고 어디를 간다는 것은 누가 봐주면 되는 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호텔 같은 곳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팥떡이의 성격상 다른 개들이 많은 공간이 정말 괜찮을지도 잘 모르겠다. 신뢰하는 훈련사의 보딩 프로그램도 생각해봤다. 그분 집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훈련도 하고 그 환경 안에서 좋은 생활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분 집의 개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미리 봐야 하고,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팥떡이가 거기서 편할지는 또 다른 얘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쌌다.
그다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가장 단순한 방식이다. 팥떡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있게 하는 것. 문제는 그게 가능한 사람이 내 주변에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가끔 산책을 맡길 수는 있어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해서 그럴 때마다 걱정이 많이 된다. 내 성격상 그냥 부탁만 하고 잘 해주기를 바라는 식으로는 잘 못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통제하고 싶고, 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요구하고 싶고, 내가 안심할 수 있는 기준을 맞추고 싶은데, 실제 관계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한동안은 여행에 대해 거의 포기하는 쪽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까지도 많이 다녔고 이제는 안 가도 된다고, 예전에는 매년 현실도피처럼 여행을 가면서 그 일주일 이주일을 위해 나머지 시간을 버텨왔는데 지금은 개가 있어서 오히려 현실을 갖게 된 거라고 스스로 말해왔다.
팥떡이 입장에서는 어디로 가는지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중요한 건 어디냐가 아니라 나랑 같이 있느냐, 그리고 자기가 편하냐 아닐까 싶을 때가 있었다.
마당
그렇다고 올해를 조용히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해보고 싶은 것들은 있다. 일단 백패킹을 가려고 한다. 작년에 팥떡이랑 같이 갔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다. 그때는 쉽지만은 않았다. 팥떡이는 어렸고, 나는 리드줄 길이와 동선을 계속 신경 써야 했고, 텐트를 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전부 조금씩 바빴다. 그래도 밤이 되고, 밖이 조용해지고, 텐트 안에서 팥떡이가 자리를 잡던 순간은 아직 선명하다. 집이 아닌 곳에서 같이 잔다는 건 이상하게 관계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 평소보다 작은 공간 안에서 서로의 움직임과 숨소리와 잠드는 속도가 더 가까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당이 있는 독채 숙소에도 가보고 싶은데 가능하면 강원도 어딘가였으면 좋겠다. 너무 도시 같지 않고, 공기가 조금 차갑고, 문을 열면 팥떡이가 바로 바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 내가 생각하는 건 대단한 여행이라기보다, 산책이 끝난 뒤에도 팥떡이가 바로 실내로 들어오지 않아도 되는 하루다. 팥떡이는 산책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려고 하면 늘 조금 아쉬워한다. 정확히는 가기 싫어한다. 바깥이 좋은 거다. 냄새도 있고, 바람도 있고, 지나가는 소리도 있고, 자기가 더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군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결국 집에 들어와야 한다. 산책은 끝나야 하고, 나는 출근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마당 있는 곳에 가서 원 없이 밖에 둬보고 싶다. 리드줄에 맞춰 계속 이동하는 산책 말고, 그냥 바깥에 있어도 되는 시간.
날이 더 더워지면 계곡에도 가려고 한다. 작년 여름에 팥떡이가 계곡에서 놀던 모습이 기억난다. 시원한 물에 들어가고, 물가에서 냄새를 맡고, 몸이 젖은 채로 돌아다니던 모습. 더운 날 시원한 물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있었고, 올해도 그런 시간을 같이 갖고 싶다.
밤
나한테 여행은 떠나는 날 시작되는 게 아니라, 다음엔 어디로 가볼까 생각하기 시작하는 밤부터다. 요즘도 밤이면 팥떡이랑 갈 수 있는 데를 한참 헤아리는데, 떠오르는 것이 셋이고 규모가 다 다르다. 이미 다녀온 하루가 하나 있고, 이번 겨울에 벼르는 하룻밤이 있고, 아직 머릿속에만 있는 한 달이 있다.
작년 겨울에 텐트를 사놓고 한 번밖에 못 썼다. 몇 년 전만 해도 틈만 나면 밖에서 자고 다녔는데, 같이 다니던 사람이 없어진 뒤로 발길이 뜸해졌고, 한동안은 그것이 핑계로 쓰기 좋았다. 이제 그 핑계는 안 쓰기로 했다. 나랑 팥떡이 둘이면 된다.
팥떡이는 사람도 개도 많은 데서는 좀처럼 편하지 못해서 우리는 늘 사람 없는 데만 찾아다녔고, 그렇게 빈 데를 고르다 보니 어디로 가느냐보다 그 빈 데서 둘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였다. 하루와 하룻밤과 한 달은 규모만 다르지 같은 이야기다.
하루
관악산은 일부러 제일 붐빌 토요일 오전에 갔다. 팥떡이랑은 산에 가도 사람 없는 새벽 서너 시에 올라가 붐비기 전에 내려오곤 했는데, 그날은 반대로 골랐다. 올라갈 때 사람만 나타나면 짖고 달려들던 팥떡이가 내려올 때는 사람만 보이면 먼저 반가워했다. 완전히 지쳐 늘어진 팥떡이한테 조금 전까지 자기가 짖어대던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물과 수박을 나눠줬고, 그렇게 얻어먹고 나서는 누가 비닐봉지를 바스락거릴 때마다 먼저 달려가 들이댔다. 사람 많을까 봐 걱정하며 간 날이었는데 팥떡이를 끝까지 걷게 한 것이 그 사람들이었다.
그날 좋았던 것은 팥떡이가 달라졌다는 것보다 하루가 길어졌다는 것이다. 혼자였으면 4시간이면 됐을 길을 사진을 찍고 계곡물에 몇 번씩 들어가 쉬면서 5시간 45분에 걸쳐 내려왔다. 빨리 안 내려오고 자꾸 멈춘 그 느림이 그날의 즐거움이었고, 그 뒤로는 어디를 가든 이 느림을 챙긴다. 다음엔 비가 많이 오는 날을 골라 다시 올라갈 생각이다.
하룻밤
팥떡이가 어릴 때는 데리고 자고 오는 게 부담이었다. 통제가 잘 안 됐고, 낯선 데서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이제는 여전히 완벽하진 않아도 둘이 하룻밤 자고 오는 정도는 해볼 만해져서, 갈 데는 정해 두다시피 했다. 선자령에서 바람을 맞으며 텐트를 치고, 강원도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바닷가에서도 한 번 자고, 고성 화암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성인대, 신선대라고도 부르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자리에 서서 눈 얹힌 울산바위를 정면으로 볼 것이다. 차를 트레일 입구에 바짝 대는 날도 있을 거고, 아예 텐트를 접고 차 안에서 자는 날도 있을 거다. 밖은 영하 십몇 도인데 안은 따뜻하고 그 안에 팥떡이랑 나뿐인 그 아늑함이 나는 좋다. 짐을 지고 능선까지 올라가는 날도 있을 건데, 무겁고 춥고 지치지만 겨울 백패킹의 진짜 재미는 사실 그 고생에 있어서, 힘든 만큼 나중까지 더 오래 가는 재미다. 어느 방식이든 차는 처음부터 돌아갈 자리다. 겨울에 개를 데리고 다닐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 팥떡이가 추워하면 곧장 따뜻한 데로 데려갈 수 있느냐라서다. 혼자 가는 백패킹의 고독도 좋지만 팥떡이랑은 최대한 같이 다니고 싶다. 팥떡이는 내 친구니까.
진돗개는 산과 들에서 오래 살아남은 이중모 자연종이라 이런 날씨는 웬만하면 몸이 알아서 견딘다. 평소엔 들어가라고 해도 안 들어가던 애가 진짜 추운 날 텐트 안에서는 알아서 침낭으로 파고들어 웅크린 채 잘 잔다. 그래도 밤새 마음을 놓지는 않는다. 사람이든 개든 저체온은 단계가 비슷하게 가는데, 떨림이 멎는 순간이 나아진 게 아니라 나빠진 신호다. 팥떡이는 말을 못 하니 나는 떨림과 웅크림과 잇몸 색과 반응 속도를 본다. 안전장치는 장비가 아니라 그 관찰이고, 이상하다 싶으면 사진이고 뭐고 없이 곧장 따뜻한 곳으로 데려간다.
카메라는 늘 제일 무거운 짐이면서 제일 중요한 짐이다. 고생해서 다녀온 하루에서 나중에 다시 꺼내 보게 되는 것은 결국 그날 담아 온 것들이라서다. 지난겨울 영하 17도에서 잠깐 조작하려고 장갑을 벗었다가 손가락이 타 들어가는 것 같은 통증이 왔고, 다시 장갑을 껴도 꽤 오래 갔다. 벗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는 장갑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팥떡이랑 보낸 하루가 사진 한 장에 제대로 담기는 날이 있다. 그거 하나면 그날은 됐다 싶어서, 손이 얼어도 몇 컷을 더 찍는다.
카메라로 기록하는 일은 나한테 정말 큰 의미가 있다. 대단한 철학이 있다기보다 그냥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붙잡아두는 일이기도 하다. 어디를 갈지 정하고,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걸 카메라로 기록하고, 돌아와서 정리하고, 나중에 다시 꺼내보는 것까지. 그 과정과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맞아떨어질 때가 정말 좋다. 그걸 반복하면 나와 팥떡이는 정말로 가진 게 많아진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진다는 뜻에 가깝다. 가진 게 많지 않은 내 삶에서, 언젠가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가 오더라도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 크다.
한 달
머릿속에만 있는 한 달은 원래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청두를 거점으로 쓰촨과 윈난을 돌고,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공가산에 가보고 싶었다. 쓰촨에서 제일 높은 7556미터, 촉산지왕이라고 불리는 산이다. 해 질 무렵 봉우리가 통째로 금빛으로 물들고 그 아래로 구름이 바다처럼 깔리는 것을 즈메이야커우라는 4500미터 전망대에서 오래 보고 싶었고, 기슭의 공가사라는 600년 된 절에 조용히 한참 앉아 있고 싶었고, 그러다 내려와 청두 시내를 팥떡이랑 걷고 싶었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런 데 앉아 있으면 뭔가 채워지는 게 있어서다.
알아볼수록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었다. 서류는 문제가 아니었다. 걸리는 것은 전부 도착한 다음이었다. 청두 도심은 어깨높이 65센티가 넘는 개를 못 기르게 돼 있고, 고원 마을에는 소와 양을 지키는 티베트 마스티프가 풀려 있어서 타견반응이 있는 팥떡이한테는 위험하고, 공가산 일대는 자연보호구라 개가 아예 못 들어간다. 제일 아까운 것은 나마봉이었다. 봉우리를 밟겠다는 게 아니라 갈 수 있는 데까지만 팥떡이랑 걸어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그 길부터가 개는 못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콜로라도로 돌렸다. 미국 서부는 팥떡이가 오기 한참 전에 여러 번 다녔다. 캘리포니아와 유타, 애리조나, 데스밸리를 돌면서 국립공원보다 차를 세우고 캠핑할 수 있는 국유림을 좋아했다. 그때는 팥떡이가 없었다. 이번엔 그 길을 팥떡이랑 다시 가고 싶다. 차를 한 달 빌려서 매일 다음 데로 이동하고, 도착하면 내려서 둘러보고 쉬고 논다. 평소에는 아침 산책이 끝나면 내가 출근해서 저녁까지 없는데 거기서는 종일 같이 있다. 팥떡이한테 차는 이미 좋은 일이 생기기 직전의 자리다. 새벽에 차를 타고 두세 시간을 달려 산에 갔다가 물가에서 쉬고 돌아오는 하루를 여러 번 해봤고, 알람 소리에 엉덩이를 흔들 듯 차에 타는 것도 좋은 신호가 됐다. 콜로라도의 한 달은 팥떡이한테 낯선 모험이 아니라, 이미 아는 제일 좋은 하루가 길게 이어지는 것에 가깝다.
코
개는 그 산이 얼마나 예쁜지를 모른다. 내가 눈 덮인 설산을 보러 가도 팥떡이한테 그것은 하얗고 큰 무언가고, 쌓인 눈조차 풍경이 아니라 코를 박고 물어뜯고 파보는 것이다. 팥떡이한테 새로운 곳은 보이는 게 아니라 냄새로 들어온다. 언 흙과 눈 밑에 눌린 풀과 밤사이 큰 짐승이 누웠다 간 자리와 나무 밑동마다 남은 코요테 표시와 다람쥐가 까먹은 솔방울 껍질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발끝마다 새로 깔려 있을 거다.
한국에서 팥떡이 코에 걸리는 정보는 대개 다른 개와 사람이고, 그 냄새의 주인은 곧 모퉁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다. 거기서는 냄새는 잔뜩 있는데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를 들거나 줄이 팽팽해질 일 없이 코만 박고 걷는 산책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 매일이 된다. 다른 개를 보면 나를 보게 하려고 오래 연습해 왔는데, 볼 개가 없는 곳에서는 그 연습이 닿으려던 상태가 처음부터 그냥 주어진다. 내가 설산에 감탄하는 동안 팥떡이는 냄새를 맡느라 고개도 안 들 거고, 같은 산에 서 있어도 둘이 받아 가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화물칸
좋은 얘기만 할 수는 없다. 큰 개는 기내에 못 타서, 가고 오는 비행 내내 열 시간 넘게 화물칸에 있어야 한다. 팥떡이는 무서울 때 나한테 오는 개가 아니다. 다리를 못 건너겠거나 천둥이 치면 나한테 붙는 게 아니라 혼자 구석으로 가서 떤다. 화물칸은 그런 팥떡이가 나한테 올 수조차 없는 곳이고, 어두운 데서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열 시간을 버텨야 하는 곳이다. 서류가 넘을 만하다는 것까지는 알아봤지만 문제는 서류가 아니라 그 열 시간이다. 내가 대신 져줄 수 없는 고생이라는 게 제일 걸린다. 그나마 추울 때 가는 게 하나는 나은데, 여름엔 더위 탓에 항공사가 화물칸에 개를 아예 안 실어주기도 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켄넬을 몇 주 전부터 집에 두고 자기 굴처럼 만들어놓는 것 정도라, 나머지 날들이 이 이틀을 감수할 만큼 좋을지를 내가 저울에 올려야 한다.
한두 시간
이 여행에서 낮보다 밤이 더 자주 생각나는데, 그 밤을 나는 이미 안다. 지난겨울 강원도에서 산을 내려와 아무도 없는 데 차를 세우고, 패딩을 입고 나와 앉기까지는 몇 분이면 됐다. 정작 제일 오래 떠올리는 것은 그렇게 앉아 있던 한두 시간이다. 입에서 김이 나고 눈 밟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다. 팥떡이는 차에서 내리면 먼저 코를 든다. 낮에 맡던 냄새가 밤이 되면 또 달라져서다. 언 땅에 코를 대고, 눈을 한 입 물어보고, 뭔가 지나간 자리에서 한참을 멈춰 있다가, 추워지면 내 옆에 붙거나 알아서 차 안 침낭으로 파고든다. 나는 앉아서 눈 덮인 능선을 본다. 하늘에 별이 많다.
다만 그 밤에도 나는 옆 텐트 소리나 지나가는 사람, 팥떡이가 누구한테 짖지는 않을까 하는 것까지 늘 뭔가를 신경 쓰고 있었다. 콜로라도에서 바라는 것은 그 신경 쓸 것들만 빠진 밤이다. 추운 데 둘이 나와 앉아 각자 자기가 좋은 걸 하는데, 나는 능선을 보고 팥떡이는 냄새를 맡는다. 이런 밤이 왜 좋은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거기서는 남는 게 몇 개 안 된다. 추위랑 눈이랑 바람이랑 어둠, 그리고 팥떡이랑 나. 그 밤엔 여기가 콜로라도인지 강원도인지도 상관이 없어진다. 낮에 아무리 멀리 다녀도 나중에 자꾸 생각나는 것은 대단할 것도 없는 이 한두 시간이고, 아무도 없는 추운 밤에 팥떡이랑 나란히 앉아 각자 다른 걸 하고 있는 그 시간이 이 여행에서 내가 제일 갖고 싶은 거다.
여기
처음에 이 여행이 걸렸던 것은 내 욕심 같아서였다. 아름다운 데는 나만 아름답고, 팥떡이는 나 때문에 열 시간짜리 화물칸에 실려 끌려다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팥떡이 눈으로 하나씩 세어보니 달랐다. 거기는 냄새가 전부 처음이고, 다른 개가 없고, 내가 하루 종일 옆에 있는 곳이다. 팥떡이한테 좋은 하루의 조건을 적어놓고 보면 조용하고 추운 콜로라도의 겨울 산이 꽤 정확히 거기 들어맞고, 내가 아름다워서 가고 싶은 이유와 팥떡이한테 편한 이유가 사람이 잘 안 가는 조용한 자연이라는 같은 데서 나온다. 앞에서 나는 팥떡이한테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적었는데 그것은 틀렸다. 팥떡이한테도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했다. 나는 그 어디를 내 눈에 보이는 걸로만 따지고 있었다.
이걸 다 적고 나서야 딴생각이 하나 들었다. 가고 싶은 데는 늘 여기가 아니었다. 개를 키우기 전에는 해마다 한두 번 어딘가로 떠나는 걸로 버텼는데,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지금에서 잠깐 빠져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이 콜로라도도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 아닌 어딘가에 더 좋은 게 있을 거라 믿고 그 언젠가를 향해 오늘을 미뤄두는 것이다. 팥떡이를 키우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내가 내 현실에서 예전만큼 도망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엉덩이를 흔드는 걸 보려고 일어나고, 출근 전 산책을 최대한 늦게까지 끌고, 하루 중에 제일 기다리는 것은 퇴근하고 문을 여는 순간이다. 이런 걸 옆에 두고도 나는 자꾸 여기 아닌 데를 계획하고 있었다. 눈 덮인 콜로라도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한 것도 실은 팥떡이랑 그 아무것도 없는 밤을 한 달 내내 이어 붙이고 싶었던 거지, 꼭 그 먼 데라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밤이라면 강원도 빈 능선에도 있고, 오늘 저녁 산책에도 절반쯤은 이미 있다.
올해를 생각하면 사진첩이 먼저 조용하다. 나는 원래 그런 식으로 시간을 세는 데 익숙했다. 어디를 갔는지,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돌아와서 다시 볼 사진이 있는지. 멀리 다녀온 날만 오래 남는 게 아니라 팥떡이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해서 내가 잠깐 더 기다린 날, 혼자 뛰러 나가려다가 같이 조금 더 걷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날이 자꾸 남는데, 이런 것은 사진으로 잘 남지 않고 남겨도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좋은 날은 생각보다 별일이 없었다. 별일이 없었다기보다 내가 별일이라고 세던 기준이 좁았고, 올해는 그 기준이 흔들렸다.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나는 아마 또 어딘가 대단한 데를 갈망할 거고, 또 한참을 헤아릴 거다.
다만 그러다 한 번씩, 발치에서 자는 팥떡이를 오래 보게 될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