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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팥팥© 2026 狗狗狗

2026. 6. 9. · 45 min read

다른 개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개를 덜 흔들리게 만들고 싶어서 훈련법을 찾아봤다. 그런데 자꾸 내 손이 먼저 보였다. 다른 개가 나타나기도 전에 줄을 짧게 잡는 손, 불편한 자리를 먼저 계산하는 습관. 통제 안에서 오히려 내가 편해진다는 것.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사실 타견반응 훈련 때문이었다. 팥떡이가 다른 개를 볼 때마다 산책이 같은 자리에서 자꾸 깨졌고, 나는 그걸 조금 더 제대로 알고 싶었다.

팥떡이를 데려오기 전부터 타견반응이 낯설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고, 큰 문제로 삼지 않기로 했다. 내 개가 다른 개를 싫어하면 내가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개와 잘 놀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팥떡이의 제일 친한 사람이 되어주면 된다고 믿었다.

그 생각 자체는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팥떡이가 모든 개를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현실에는 내가 전부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병원에 가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고, 산책길에서 갑자기 개가 나오고,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함께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팥떡이가 너무 힘들어한다면, 그건 내가 대신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타견반응을 신경 쓰는 이유는 팥떡이를 사교적인 개로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팥떡이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을 조금 덜 힘들게 지나가게 해주고 싶어서다. 다른 개를 좋아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다른 개가 있어도 세상이 갑자기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려주고 싶었다.

개를 훈련시키려던 글이, 점점 내가 어디까지 관리하고 어디까지는 준비시켜야 하는지 적는 글이 됐다.

처음엔 보상만 쓰는 쪽 자료를 많이 봤다. 다른 개를 보면 간식을 주고, 거리를 벌리고, 아직 먹을 수 있는 거리에서 좋은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해서 다른 개라는 신호가 곧장 긴장으로 이어지지 않게 만드는 방식. 거리를 벌려 반응 자체를 낮추는 둔감화와, 그 옆에 좋은 일을 붙여 의미를 바꾸는 역조건화. 말로는 맞았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됐다.

그런데 산책길에서는 늘 그렇게 깔끔하지 않았다. 팥떡이는 21kg이고, 다른 개가 갑자기 코너에서 나오면 줄은 이미 팽팽해져 있었다. 나는 간식을 들고 있는데 팥떡이는 냄새도 맡지 않았다. 좁은 길에서는 물러날 자리가 없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문이 열리는 속도가 내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빨랐다.

그래서 한동안 다른 쪽도 찾아봤다. 줄에 힘이 걸렸다가 개가 따라오면 풀어주는 것, 스트레스가 생기고 개가 움직이고 그 스트레스가 사라진 뒤 보상이 붙는 것, 그러니까 압박을 그냥 벌로 쓰는 게 아니라 개가 빠져나올 길을 찾게 만드는 방식. 설명만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솔직히 끌리기도 했다. 나는 사람이든 개든, 아무 압박 없이 좋은 것만 받으면서 배운다는 말이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뭔가를 견디고,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고, 그걸 해냈을 때 생기는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NePoPo도 그래서 흥미로웠다. 불편한 자극이 먼저 오고, 개가 행동을 찾으면 그 불편함이 사라지고, 그 뒤에 다시 좋은 보상이 온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잘 짜인 압박은 개를 꺾는 게 아니라 개가 빠져나올 길을 알게 해준다는 말도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내가 압박이라고 부르던 건 한 가지가 아니었다. 조작적 조건형성에서 +와 -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뭔가를 더하느냐 빼느냐에 가깝고, 강화와 처벌은 행동이 늘어나느냐 줄어드느냐에 가깝다. 산책줄을 잡은 손 입장에서는 이 구분이 꽤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기호말뜻산책줄을 잡고 보면
R+좋은 것을 더해서 행동이 늘어남다른 개를 보고 다시 나를 보면 마커 뒤에 간식이 나온다
R-불편한 것을 빼서 행동이 늘어남줄에 걸린 압박이, 내 쪽으로 움직이면 풀린다
P+불편한 것을 더해서 행동이 줄어듦짖거나 튀어나가려는 순간 불편한 신호를 더해 행동을 끊는다
P-원하는 것을 빼서 행동이 줄어듦앞으로 가고 싶을 때 잠깐 멈추고, 느슨해진 뒤 다시 걷는다

흥미로웠던 NePoPo도 이 표 위에 올려놓으면 분명해진다. 처음의 불편함은 R-고, 마지막 보상은 R+다. NePoPo는 그 둘을 한 줄로 엮은 셈이다.

표로 적으면 간단하다. 그런데 실제 산책에서는 타이밍이 전부다. 나는 R-라고 생각하고 줄 압박을 풀어주는 연습을 한다고 해도, 팥떡이가 이미 긴장해 있거나 내가 늦게 반응하면 팥떡이는 그걸 압박이 풀리는 훈련으로 받지 않을 수 있다. 다른 개를 보면 줄이 불편해진다. 다른 개 옆에서 내 손이 거칠어진다. 내가 원한 건 그런 연결이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뭘 찾고 있었는지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팥떡이한테 더 강한 통제를 걸고 싶었다기보다, 산책이 매번 무너지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간식 하나뿐이라는 느낌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뭔가 더 선명한 방법, 더 빠른 방법,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통제는 꼭 나쁜 말만은 아니었다

통제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으로 들린다. 압박도 그렇다. 스트레스도 그렇다. 훈련 글에서 이런 단어가 나오면 대개 피해야 할 것으로만 다뤄진다.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을 완전히 나쁘게만 느끼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통제받는 일이 어떤 때는 편안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내가 그 사람을 믿고, 그가 나보다 더 넓게 보고 있다고 느끼고, 그가 정한 규칙 안에서 내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가 있다. 내가 모든 걸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내 판단을 잠깐 내려놓고, 그 사람의 기준 안에 기대어도 된다는 감각.

그건 복종이라는 말 하나로는 조금 모자라다. 억지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맡기는 쪽에 가깝다. 내가 믿는 사람의 통제 안에서 내 몸이 느슨해지는 일. 내 쪽에도 누군가의 기준 안에서 편해지는 감각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인지, 나는 개 훈련에서 말하는 압박과 통제도 처음부터 악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개한테도 그런 게 있을 수 있다. 좋은 핸들러가 만든 규칙 안에서 개가 더 편안해지는 것.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는 것보다, 지금은 이걸 하면 된다는 기준이 있는 쪽이 더 안정적일 때가 있다. 통제는 어떤 개에게는 무서움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지금도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은 그렇게 깨끗하게 나뉘지 않는다. 자유라는 말 뒤에 방치가 붙어 있을 때가 있고, 배려라는 말 뒤에 회피가 붙어 있을 때가 있다. 통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통제는 폭력이고, 어떤 통제는 기대도 되는 구조다. 문제는 둘이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만 문제는 팥떡이의 타견반응이었다. 팥떡이가 다른 개를 보고 이미 긴장한 상태라면, 내가 줄로 압박을 더하는 순간 팥떡이가 뭘 느낄까. 다른 개를 보면 줄이 불편해진다. 다른 개가 가까이 오면 내가 불편한 사람이 된다.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개를 봐도 괜찮다는 경험인데, 잘못하면 다른 개 옆에 내 압박까지 같이 붙을 수 있었다.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렸다.

내가 먼저 긴장하는 날도 있었다

팥떡이는 평소엔 머리를 잘 쓴다. 간식을 바닥에 두면 어떻게 꺼내 먹을지 한참 궁리하고, 내가 멈추면 같이 멈춰서 내 얼굴부터 본다. 집에서는 신중하고, 산책길에서도 웬만한 소리에는 한 번 확인한 뒤 다시 냄새를 맡는다.

다른 개가 보이면 그 속도가 달라진다. 냄새 맡던 걸 멈추고, 머리가 올라가고, 몸이 앞으로 쏠린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면 줄이 팽팽해지고, 내가 이름을 불러도 바로 돌아보지 않는다. 평소라면 바로 먹을 닭가슴살도 그때는 코앞에 있어도 안 먹는 날이 있다.

그런데 이걸 팥떡이 반응으로만 보면 빠지는 게 있다. 내가 먼저 바뀌는 날이 있다. 멀리서 개가 보이기 전부터 골목 끝을 보고,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줄을 짧게 잡고, 공원 입구에서 벤치 아래와 코너 너머를 훑는다. 아직 팥떡이는 냄새를 맡고 있는데 내 손이 먼저 긴장한다.

팥떡이는 그런 걸 잘 읽는다. 내가 숨을 줄이고, 걸음을 끊고, 줄을 짧게 잡으면 팥떡이도 머리를 든다. 실제로 앞에 개가 있어서 그럴 때도 있지만, 내가 그럴 것 같다고 예상해서 먼저 만든 긴장도 있다. 그럴 때는 훈련을 하는 건지, 내 예민함이 팥떡이에게 먼저 건너가는 건지 헷갈린다.

예전에 비슷한 얘기를 쓴 적이 있다. 개보다 내가 먼저 예민해지고, 내가 예민하게 읽은 상황에서 팥떡이도 같이 예민해지는 것. 타견반응을 다룬다고 하면서, 정작 나는 팥떡이보다 한발 먼저 세상을 경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저쪽에서 사람 몇이 시끄럽게 떠들며 오는 걸 보고 내가 먼저 길을 돌렸다. 팥떡이는 그 사람들한테 아무 관심도 없었다. 냄새를 맡고 있었고, 줄도 느슨했다. 그날 보인 건 팥떡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긴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때 불편했던 건 사람 몇 명이 아니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내가 먼저 산책줄에 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간식이 안 먹히는 날

한동안은 개가 보이면 무조건 간식을 줬다. 다른 개라는 신호를 좋은 일로 바꿔보려는 거였다. 역조건화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무서운 것, 흥분되는 것, 몸이 먼저 튀어나가는 것 옆에 좋은 일을 조심스럽게 붙여주는 일.

LAT도 여기서 다시 보였다. 다른 개를 못 보게 하는 훈련이 아니라, 일부러 보게 하고, 표시하고, 먹고, 다시 돌아오게 하는 패턴이다. 처음엔 거의 R+다. 팥떡이가 다른 개를 본다. 내가 "봤어" 같은 마커를 준다. 간식이 나온다. 그다음엔 조금씩 바뀐다. 다른 개를 보고도 다시 나를 보는 행동, 그러니까 보고-돌아오기가 보상으로 굳는다.

가끔은 됐다. 팥떡이가 멀리 개를 보고 나를 돌아봤다. 간식을 기대하는 얼굴로. 다른 개를 본다. 다시 나를 본다. 닭가슴살을 먹는다. 그리고 지나간다. 그런 날은 산책이 끝나고도 손에 남는 긴장이 덜했다.

그런데 안 되는 날은 정말 안 됐다. 개가 보이자마자 팥떡이 몸이 굳고, 줄이 당겨지고, 간식 냄새를 맡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귀만 살짝 움직이거나, 아예 안 들리는 것처럼 앞만 봤다. 그런 날은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간식이고, 같은 말이고, 같은 산책인데 어떤 날은 되고 어떤 날은 안 됐다.

방법보다 먼저 거리가 문제였다. 개한테는 역치라는 게 있다. 어느 거리까지는 아직 생각할 수 있고, 어느 거리부터는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 지점을 지나면 간식의 가치가 떨어지고,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잘 들어오지 않고, 새로 뭘 배우기 어렵다.

팥떡이가 닭가슴살을 안 먹던 건 고집이 아니었다. 나를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너무 가까웠던 거다.

"길 가다 우연히"는 거리를 내가 못 정한다. 개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니까. 나는 매번 이미 늦은 자리에서 간식을 주고 있었던 거다. 둔감화든 역조건화든 출발점은 비슷했다. 둘 다 팥떡이가 아직 먹을 수 있는 거리, 아직 내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 줄이 다시 느슨해질 여지가 남아 있는 거리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걸 알고 나니 산책에서 봐야 할 게 달라졌다. 다른 개와 몇 미터 떨어졌는지만 보는 게 아니었다. 팥떡이가 간식을 받는지, 씹는 속도가 느려졌는지, 목이 앞으로 길어졌는지, 등이 굳었는지, 한번 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봐야 했다.

같은 거리라도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아니었다. 비가 온 날, 공사 소리가 큰 날, 아침에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서 놀란 날은 기준이 달라졌다. 반응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루 안에 쌓였다. 작은 긴장이 몇 개 겹치면, 평소엔 괜찮던 거리도 갑자기 너무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길을 돌리는 일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피하는 건 실패가 아니었다. 팥떡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로 가기 전에 빠져나오는 것도 훈련의 일부였다.

그런데 길을 돌리는 게 관리인지 그냥 피하는 건지는, 발만 봐서는 구분이 안 된다. 둘 다 똑같이 개를 등지고 걷는 일이니까.

다만 빠져나오는 타이밍이 늦으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팥떡이가 짖고, 상대 개가 멀어지고, 그 순간 팥떡이 몸에서 불편함이 빠진다면 팥떡이는 이렇게 배울 수 있다. 짖으면 거리가 생긴다. R-가 내 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길 위에서도 일어나는 셈이다.

그래서 거리 보상은 내가 먼저 줘야 한다. 팥떡이가 짖은 뒤에 끌려나오는 게 아니라, 아직 먹을 수 있고 아직 한 번 돌아볼 수 있을 때 내가 먼저 방향을 바꾸는 것. 같은 U턴이어도 팥떡이한테 남는 배움은 다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그 말을 너무 빨리 반겼다는 것이다. 산책에서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다른 개가 언제 나올지, 팥떡이가 어느 거리에서 무너질지는 내 몫이 아니었다. 그런데 길을 돌리는 것만은 온전히 내 손에 있었다.

그런데 산책이 무너질 때마다 나는 내가 쥘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어떤 날은 빠져나가는 쪽이었고, 어떤 날은 밀어붙이고 싶은 쪽이었다.

내가 원한 건 밀어주는 쪽의 압박이었다

내가 압박에 끌린 건 개 훈련 이전에 내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 어려운 일을 앞에 두고 있을 때, 누군가가 좋게만 이끌어주는 것보다 강하게 기준을 걸고 더 밀어붙여줄 때 내가 더 움직인 적이 있다. 피하고 싶어도 조금 더 버티게 만들고, 내가 스스로 낮춰둔 한계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 사람. 그런 압박을 지나 해냈을 때는 누가 나를 가만히 믿어준 것과는 다른 종류의 힘이 생겼다.

내가 생각한 한계보다 조금 더 갈 수 있다는 걸 몸으로 확인하는 느낌. 그게 좋았다.

다정하게 받아주는 게 늘 나를 위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믿는 사람이 기준을 높게 걸고 밀어붙일 때, 내가 아직 안 쓴 힘을 먼저 봐준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압박 자체의 선악이 아니었다. 내가 끌린 건 개를 겁주거나 무너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해볼 수 있는 자리에서 조금 더 해보게 만드는 힘이었다. 프리쉐이핑에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친레스트에서 기준을 한 단계 올리는 것, 줄에 기대던 몸이 스스로 균형을 잡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 그런 압박은 벌이라기보다 과제에 가깝고, 동기부여에 가깝다.

NePoPo에서 흥미로웠던 것도 그 부분이었다. 불편함을 크게 주자는 말보다, 개가 빠져나갈 길을 알고, 그 길을 스스로 찾고, 바로 보상으로 닫히는 구조. 개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풀 수 있는지"를 배우고, 그 뒤에 해냈다는 감각까지 받는 구조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압박은 줄을 세게 당기거나, 큰 소리로 막거나, E컬러라고 부르는 도구 같은 자극으로 개를 눌러버리는 쪽과는 다르다. 그런 방식이 들어간 훈련에서 스트레스 신호가 늘거나 훈련장 밖의 판단 과제에서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는 연구가 있고, 강한 도구를 잘 쓰면 반드시 더 낫다는 결론도 나오지 않았다. 보상 중심 그룹이 더 빠르거나 더 적은 명령으로 해낸 과제도 있었다. 내가 압박에 기대했던 건 빠른 제압이 아니라 좋은 푸쉬였는데, 그 연구들이 가리키는 곳은 내가 찾던 압박의 장점과 같은 자리가 아니었다.

다만 타견반응 앞에서는 그 구분이 생각보다 쉽게 흐려질 수 있다. 내가 의도한 건 "해봐, 할 수 있어"에 가까운 푸쉬여도, 팥떡이가 이미 긴장한 상태라면 다르게 받을 수 있다. 팥떡이가 다른 개를 봤다. 그 순간 줄이 짧아졌다. 내 목소리가 낮아지고, 손이 거칠어졌다. 이 순서가 몇 번 반복되면, 팥떡이한테는 다른 개와 내 불편함이 같이 묶일 수 있다. 좋은 푸쉬를 그렇게 정교하게 걸 자신이, 다른 개 앞에서는 없었다.

수의 행동학 쪽에서 낸 AVSAB 자료도 생각보다 단순한 착한 말은 아니었다. 보상 기반이라는 말이 규칙 없음이나 방치를 뜻하지 않았다. 환경을 관리하고, 개가 성공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루틴과 기준을 세우는 일까지 포함한다. 간식만 들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쪽이 아니라, 팥떡이가 실패할 자리에 계속 세우지 말라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 보류하는 건 압박 전체가 아니다. 타견반응 앞에서 압박을 먼저 쓰는 일이다. 팥떡이에게 필요한 푸쉬는 다른 개 앞에서 줄로 더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아직 먹을 수 있는 거리에서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돌아오고, 그걸 해냈다고 느끼게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멀리서 보고, 먹고, 빠져나오고, 쉬고, 다음 날 다시 한다.

이게 너무 느려 보였다. 그래도 지금 팥떡이한테는 그 느린 쪽이 맞는 것 같았다.

정작 내가 처음 한 건, 복종이 아니었다

팥떡이는 3개월에 왔다. 그 전에 다른 개와 훈련을 익혀둔 덕에, 오자마자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키는 대로 따르게만 만드는 훈련은 아니었다. 머리를 쓰게 하고, 같이 놀고, 둘이 익숙해지는 쪽이었다.

데려오고 거의 처음부터 계속 같이 한 건 힐과 기본 오비디언스였다. 밖에서 안전하게 데리고 다니려면 필요한 통제이기도 했지만, 팥떡이한테는 머리와 몸을 같이 쓰며 나랑 놀고, 보상을 받고, 먹이를 먹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둘 사이의 유대를 쌓았다. 복종이라는 한 단어로는 다 안 담기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이 한 건 프리쉐이핑이다. 물건 몇 개를 바닥에 두고, 정해둔 하나를 건드리면 간식을 줬다. 처음엔 한참 걸린다. 팥떡이는 우연히 건드려서 간식을 먹어도 왜 먹었는지 모른다. 더 기다리면, 어느 순간 스스로 알아낸다. "이걸 건드리면 간식이 나오는구나." 그때부터는 눈빛이 달라진다.

물건 하나를 알아내는 데 길면 이십 분 넘게 걸리기도 했다. 오히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이 훈련의 핵심에 가까웠다. 나는 팥떡이가 답을 받아먹는 개가 아니라, 답을 찾아내는 개가 되길 바랐다.

친레스트도 가르쳤다. 내가 "터치!"라고 말하면 팥떡이가 내 손바닥에 턱을 올리는 행동이다. 그땐 그냥 귀엽고 편해서 했다. 타견반응을 다시 보면서 알았다. 팥떡이가 다른 개를 본 뒤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는 행동이 지금 제일 필요하다는 걸.

다른 개를 못 보게 하는 게 아니라, 보고도 다시 돌아오는 것. 너무 가까워지기 전에 한 번 끊어오는 것.

예전에 하던 놀이와 지금 필요한 훈련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다른 개를 봤다는 사실을 혼내는 게 아니라, 봤다는 걸 같이 확인하고, 아직 돌아올 수 있을 때 돌아오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 팥떡이는 원래부터 그런 걸 잘 배울 수 있는 개였다. 내가 그 거리를 너무 늦게 알았을 뿐이다.

그때 나는 팥떡이가 내 얼굴을 보는 행동을 계속 만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팥떡이가 혼자 생각하고 다시 돌아오는 개가 되길 바라면서, 내 생활은 점점 팥떡이 일정에 맞춰두고 있었다.

세상을 등지는 쪽이 편해졌다

나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쪽이 좋다. 이건 고쳐야 할 결핍이라기보다 내가 고른 방향에 가깝다. 팥떡이와 살게 된 뒤로 그 방향은 더 선명해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굳이 만들지 않고, 설명해야 하는 관계를 늘리지 않고, 내 하루의 중심을 팥떡이 루틴에 두는 것. 나는 그게 좋다.

가끔은 팥떡이와 내가 세상을 등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세상과 싸우는 쪽보다는, 세상을 덜 상대해도 되는 둘만의 자리가 생긴 느낌에 가깝다. 밖에서 보면 조용한 생활이고, 안에서 보면 꽤 단단한 생활이다. 하네스, 물그릇, 밥그릇, 정해진 산책로, 정해진 귀가 시간, 정해진 우선순위. 내가 크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고, 누군가에게 내 상태를 매번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다.

그 느낌이 꽤 좋다.

사람을 적게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덜 만들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세상을 들여놓는 일은 내 생활에서는 꽤 정확한 선택이다.

처음엔 내 개가 싫어하는 건 내가 대신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팥떡이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개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세상을 덜 상대하고 싶다는 것과, 팥떡이가 세상을 전부 피하며 살아도 된다는 말은 다르다. 병원 문도, 엘리베이터 문도 내가 원하는 만큼 깨끗하게 비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런 자리를 굳이 안 만들며 살 수 있지만, 팥떡이는 내가 미처 못 비운 그 자리에서 자기 몸으로 버텨야 한다.

훈련은 산책 시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훈련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자꾸 이상해진다. 오늘은 훈련을 했고, 내일은 못 했고, 이번 주는 잘했고, 다음 주는 망했고. 그런 식으로 세면 금방 질린다. 나한테도 팥떡이한테도 별로 맞지 않는다.

훈련은 생활 쪽에 더 가깝다. 같은 시간에 나가고, 같은 기준으로 빠져나온다. 내가 피곤한 날에도 대충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구조다. 마음은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좋은 날엔 다 잘할 것 같고, 나쁜 날엔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러니 마음보다 규칙이 조금 더 낫다.

루틴은 불안을 줄인다. 나는 그 규칙 안에 있을 때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정해진 시간에 나가고 정해진 순서로 돌아오는 동안은 적어도 내가 하루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안심이 든다. 그런데 그 안심이 늘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어떤 루틴은 불안을 줄이기보다 숨기고, 가끔은 내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된다.

앞에서 나는 누군가의 통제 안에서 편해졌던 얘기를 했다. 이번엔 방향이 반대다. 내가 팥떡이에게 그런 기준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다만 받는 쪽일 때와 주는 쪽일 때는 무게가 다르다. 내가 만든 규칙이 정말 팥떡이를 편하게 하는지는 팥떡이만 안다. 그래서 그 통제는 기분이 좋은 날에만 친절한 통제가 아니라, 내가 피곤하고 예민하고 별로인 날에도 크게 망가지지 않는 통제여야 한다. 좋게 말하면 생활 방식이고, 덜 좋게 말하면 내가 나를 못 믿어서 만드는 장치다.

타견반응 훈련 기준

기술기준할 일
역치 확인간식을 먹고 이름을 부르면 돌아볼 수 있는 거리그 거리에서만 연습한다
LAT 시작다른 개를 보면서도 간식을 먹을 수 있음팥떡이가 보면 "봤어"로 표시하고 바로 보상한다
보고-돌아오기다른 개를 한 번 본 뒤 다시 나를 봄R+로 강화하고 지나간다
거리 보상아직 짖기 전인데 몸이 앞으로 굳기 시작함내가 먼저 방향을 바꿔 거리를 준다
중단간식을 안 먹고 이름에 반응하지 않음더 가르치지 말고 빠져나온다
R- 금지선이미 줄이 팽팽하고 몸이 앞으로 고정됨줄 압박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산책 후반응이 있었던 날바로 추가 자극을 주지 않고 쉬게 둔다

표에 R-를 금지선으로 적은 건, 같은 R-라도 조용한 자리에서 줄을 풀어 만드는 쪽과 팥떡이가 이미 굳은 자리에서 줄 압박을 거는 쪽이 전혀 다르게 남기 때문이다. 앞쪽은 연습이 되고, 뒤쪽은 그 금지선이 된다.

내 훈련이자 생활 기준

아침 출근도 여기 들어간다. 나는 보통 아침 7시에 집을 나가고, 저녁 6시쯤 돌아온다. 그 사이 팥떡이는 쉬를 못 한다. 그래서 아침 산책을 최대한 늦게 끝내려고 한다. 시간만 보면 맞는 선택인데, 산책이 끝나자마자 내가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기고 급하게 나가는 흐름이 반복되면 그 자체가 출근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아침에 필요한 건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덜 분주한 순서다. 분주하게 바쁜 척하지 않기. 미안한 표정으로 오래 달래지 않기. 나가는 일을 큰 사건처럼 만들지 않기. 이것도 결국 내가 지켜야 할 훈련 기준에 들어간다.

영역기준할 일
출근 전분주하게 바쁜 척하지 않기전날 옷과 가방을 준비하고, 산책 후 5~10분은 남긴다
나가기출발을 큰 사건으로 만들지 않기낮은 톤으로 짧게 말하고 바로 나간다
귀가 후흥분을 크게 키우지 않기잠깐 정리하고 팥떡이가 가라앉은 뒤 산책 준비를 한다
외부 일정팥떡이 루틴이 최우선산책·밥·휴식 시간을 먼저 고정하고 사람 약속은 그 뒤에 둔다
둘이 있는 시간생활의 중심으로 둔다불필요한 외부 일정보다 회복과 루틴을 우선한다
산책 시간엄격한 생활 기준늦게 미루지 않고 출근·귀가 일정의 중심에 둔다
통제믿을 수 있는 규칙 안에서 편해지는 것규칙이 편안함을 만드는지 계속 확인한다

별일 없는 산책을 쌓는 일

처음엔 훈련법을 더 알고 싶어서 시작했다.

여전히 훈련법을 더 알고 싶다. 나는 팥떡이가 다른 개를 보고도 먹고,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고, 지나간 뒤에도 줄이 느슨해지는 날을 늘리고 싶다. LAT든 R+든 역치 아래 훈련이든, 결국 목표는 그렇게 작은 날들을 만드는 일이다.

지난 글에 좋은 날은 생각보다 별일이 없었다고 쓴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본 흑봉이 말고도, 가호와도 이제 대부분은 아무 일 없이 같은 공간에 있다. 가호를 만날 때마다 생각한다. 타견반응 작업의 목표는 특별한 성공이 아니라, 이렇게 아무 일 없는 시간을 늘리는 일이다.

좋은 산책은 가까이 가는 산책이 아니라, 돌아와도 회복이 남아 있는 산책일 때가 있다. 다른 개를 아주 멀리서 보고, 팥떡이가 나를 한 번 보고, 닭가슴살을 먹고, 서로 지나간 뒤에도 줄이 다시 느슨해지는 날. 아무도 보면 모를 정도로 작은 일이지만, 그런 날이 쌓여야 몸이 조금씩 다른 예상을 한다.

나는 사람들 사이로 더 넓어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원래도 그런 쪽의 사람이 아니었고, 팥떡이와 살게 된 뒤로는 더 그렇다. 다만 내가 세상을 덜 상대하기로 했다면, 팥떡이가 피할 수 없는 최소한의 세상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게 지금 이 훈련을 계속 붙잡는 이유다. 팥떡이가 모든 개를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병원 대기실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산책길 모퉁이에서,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어떤 자리에서 세상이 갑자기 전부 불편한 것으로 바뀌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아무리 조용한 생활을 골라도 팥떡이는 내 선택 바깥의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마다 매번 몸이 먼저 굳고, 줄이 팽팽해지고, 먹을 수 있던 것도 못 먹게 된다면 그건 그냥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방법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건 팥떡이가 지금 어느 거리에서 아직 나를 볼 수 있는지 읽는 일이고, 더 어려운 건 내가 먼저 줄을 짧게 잡고 있지는 않은지 보는 일이다. 둘 다 아직 잘 못 읽는다.

처음엔 훈련법을 더 알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훈련법이라는 말 안에 팥떡이만 들어 있지는 않다. R+와 R-, LAT 같은 말은 산책줄을 잡은 내 손, 아침에 급하게 나가는 순서, 내가 세상을 덜 상대하려고 고른 생활까지 같이 건드린다.

세상을 등지고 사는 건 좋다. 다만 등진 채로도, 팥떡이가 지나가야 할 길은 남아 있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개가 보이기 전에도, 내가 먼저 어디를 보고 있는지 한 번 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