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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팥팥© 2026 狗狗狗

2026. 5. 20. · 42 min read

좋은 날은 생각보다 별일이 없었다

작년보다 멀리 가지 못한 해에, 팥떡이와 나는 조금 덜 급해졌다

올해는 아직 팥떡이랑 특별한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작년에는 시간이 많았다. 계곡도 갔고, 반려견 놀이터도 거의 매일 갔고, 백패킹도 갔고, 등산도 자주 갔다. 팥떡이는 아직 어렸고, 나는 하루 대부분을 팥떡이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기에 내가 그렇게 시간을 많이 낼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퍼피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때 옆에 있어줄 수 있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올해는 아직 그런 일이 많지 않다. 멀리 계곡을 다녀오지도 못했고, 백패킹도 아직 못 갔고, 산에 자주 가지도 못했다. 작년에 비하면 특별하다고 부를 만한 시간이 훨씬 적었다. 그래서 아쉬워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게 조금 이상했다.

작년에는 시간이 많았고, 팥떡이는 아직 어렸다

작년의 팥떡이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 몸은 이미 제법 컸는데, 반응은 아직 퍼피에 가까웠다. 에너지가 많았고, 원하는 게 생기면 몸이 먼저 앞으로 나갔고, 새로운 곳에 가면 냄새와 소리와 움직임을 따라가느라 팥떡이도 나도 하루가 정신없이 흘렀다.

나는 그걸 따라가느라 늘 조금 긴장해 있었다. 같이 놀러 간다는 말은 맞았지만, 어떤 날은 팥떡이가 노는 동안 내가 계속 리드줄 길이를 조절하고, 주변 개들과 물가를 살피고, 텐트팩을 박다가도 팥떡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텐트를 칠 때도 리드줄을 완전히 놓지 못했고, 계곡에 가도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게 계속 봐야 했고, 놀이터에서도 누가 다가오는지, 팥떡이가 너무 흥분하지는 않는지, 내가 어디서 한 번 멈춰줘야 하는지 자꾸 계산하게 됐다.

그래도 그 시기의 팥떡이를 떠올리면 자주 웃게 된다. 시원한 계곡물에 들어가고, 냄새를 맡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쳐 잠드는 모습까지 한 덩어리로 남아 있다. 그때 남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 아직도 그 시기의 공기가 조금 느껴진다.

그때의 나는 조금 성급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팥떡이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 자주 확인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팥떡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이미 컸고, 생활도 거의 팥떡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막상 같이 있을 때는 아직 서로의 속도가 자주 엇갈렸다. 팥떡이는 아직 나를 알아가는 중이었고, 나도 팥떡이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시간은 분명히 쌓이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어떤 믿음으로 바뀌는지는 아직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을 오래 공유해도 상대가 언제 마음을 놓고,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예민해지고, 어떤 요구를 소리로 말하고 어떤 불편함을 몸으로 먼저 말하는지는 따로 배워야 했다. 매일 같이 산책하고, 밥을 주고, 잠을 자고, 여행을 다니는 생활 속에서 조금씩 쌓이는 단서들이 있었고, 그때의 나는 팥떡이를 많이 보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천천히 읽는 쪽에는 아직 익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그렇게 많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걸 수도 있다. 작년의 나는 팥떡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는 속도와, 실제로 서로를 알아가는 속도가 늘 같지는 않다는 걸 그 생활 안에서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올해는 조금 덜 멀리 갔다

올해는 작년만큼 많이 다니지 못했다. 그런데 대신 다른 종류의 시간이 생겼다.

새로운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시간도 있었고, 팥떡이와 내가 그 안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다시 보게 됐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내 생활의 우선순위까지 같이 보여주는 일이었고, 팥떡이가 있는 삶을 누군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보게 되는 일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이상하게 팥떡이와 나 사이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더 친해졌다고 말하면 너무 단순한가 싶다. 서로에게 더 익숙해졌다는 말이 조금 더 맞을 수도 있다. 팥떡이는 이제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더 잘 아는 것 같고, 나는 팥떡이가 어떤 얼굴로 기다리고, 어떤 속도로 흥분이 올라오고, 어떤 때에 그냥 더 있고 싶어하는지 예전보다 조금 더 빨리 본다.

아직도 자주 틀린다. 나는 여전히 늦게 알아듣는 날이 있고, 여전히 단정하는 날이 있다. 그런데 작년보다는 조금 덜 급하게 보는 것 같다. 예전에는 팥떡이가 뭔가를 하면 바로 고치거나 해결해야 할 것처럼 느꼈는데, 지금은 잠깐 더 보게 된다. 이게 지금 정말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팥떡이가 자기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건지, 내가 너무 내 기준으로만 읽고 있는 건 아닌지.

올해는 그런 식의 하루가 많았다. 아침 산책을 나가고, 밥을 챙기고, 잠깐 놀고, 다시 기다리고, 밖에 더 있고 싶어하는 팥떡이를 보고, 밤에 옆에서 자는 모습을 보는 일들. 밖에서 보기엔 너무 평범하지만,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팥떡이가 하루를 어떤 순서로 받아들이는지 조금 더 알게 됐고, 팥떡이도 내가 언제 나가고 언제 돌아오고 언제 기다려주는 사람인지 조금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올해를 너무 아무 일 없는 시간처럼 생각했던 게 조금 이상하다. 백패킹, 계곡, 설악산 같은 일은 적었지만,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같이 있는 시간이 덜 조급해졌고, 작년에는 자꾸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들이 올해는 조금 덜 바빴다.

처음엔 그걸 잘 몰랐다.

산에 가는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

나는 산에 가는 걸 좋아한다. 매년 설악산에 갔고, 공룡능선이나 대청봉 같은 긴 산행을 좋아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14시간 넘게 걷고, 이동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이상이 통째로 들어가는 그런 산행. 몸은 힘든데, 그 힘든 시간이 이상하게 나한테 필요했다.

긴 산행을 하면 마음이 단순해진다. 처음 몇 시간은 몸이 무겁고, 왜 굳이 새벽부터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어느 지점부터는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무겁고 배낭도 괜히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계속 걷다 보면 머릿속에서 붙잡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남는 건 발을 어디에 둘지, 물을 언제 마실지, 숨이 얼마나 가쁜지, 다음 오르막을 어떤 속도로 넘을지 같은 것들이다. 몸이 힘들어질수록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감각을 좋아했다.

작년에는 설악산에 가지 못했다. 팥떡이가 생겼고, 팥떡이를 두고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하루 이상을 비운다는 게 그냥 일정 하나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봐줄 수 있는지, 팥떡이가 괜찮을지,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지, 그 모든 게 같이 걸렸다.

올해는 한 번쯤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팥떡이와 함께하는 생활도 작년보다 훨씬 안정됐고, 나도 적응을 많이 했다. 팥떡이를 믿는 마음도 커졌고, 팥떡이가 어느 정도 혼자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더 알게 됐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하루 정도 산에 다녀오는 일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혼자 하는 활동을 조금 덜 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걸 혼자 하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산도 혼자 가고, 달리기도 혼자 나가고, 긴 시간 걷는 것도 혼자 했는데, 팥떡이와 살고 나서는 내가 하루를 통째로 비우거나 운동 시간을 따로 떼어내는 일이 전처럼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팥떡이는 그 시간 동안 자기 하루를 보내겠지만, 내가 그 하루에 같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고, 그래서 혼자 설악산을 생각하거나 러닝화를 신고 나가려 할 때도 이 시간이 정말 나한테만 따로 필요한 시간인지, 아니면 팥떡이와 같이 걷고 조금씩 뛰는 쪽으로 바꿔도 되는 시간인지 자꾸 다시 보게 된다.

달리기도 그렇다. 나는 보통 5km나 10km 정도를 뛰는데, 팥떡이는 그런 식으로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오래 가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뛰고, 신나서 몸을 쓰고, 장난치듯 달리는 건 좋아하지만 그냥 앞으로 오래 달리는 건 팥떡이한테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려면 결국 혼자 나가게 되는데, 요즘은 그게 예전만큼 시원하게만 느껴지지 않고, 내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팥떡이와 보낼 시간을 따로 빼내는 것보다 산책 중간중간 짧게 뛰고, 멈춰서 냄새 맡는 시간을 기다리고, 다시 조금 걷는 식의 움직임이 지금의 우리한테 더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혼자 하는 시간도 여전히 필요하다. 설악산도 언젠가는 다시 가고 싶고, 긴 산행이 내 마음을 어떻게 비워주는지도 여전히 안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혼자 멀리 다녀오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내 하루가 이미 팥떡이랑 너무 많이 연결돼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는 그걸 팥떡이와 같이 사는 생활에 맞춰 다시 조정하고 있다.

그래도 올해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올해를 조용히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해보고 싶은 것들은 있다.

일단 백패킹을 가려고 한다. 작년에 팥떡이랑 같이 갔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다. 그때는 쉽지만은 않았다. 팥떡이는 어렸고, 나는 리드줄 길이와 동선을 계속 신경 써야 했고, 텐트를 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전부 조금씩 바빴다. 그래도 밤이 되고, 밖이 조용해지고, 텐트 안에서 팥떡이가 자리를 잡던 순간은 아직 선명하다. 집이 아닌 곳에서 같이 잔다는 건 이상하게 관계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 평소보다 작은 공간 안에서, 서로의 움직임과 숨소리와 잠드는 속도가 더 가까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올해 다시 가면 또 다를 것 같다. 팥떡이는 작년보다 나를 더 자주 확인하고, 나도 팥떡이가 어느 정도에서 편안한지 조금 더 안다. 같은 백패킹이어도 올해의 밤은 작년과 다른 방식으로 지나갈 것 같다. 그 사이에 팥떡이는 나를 확인하는 방식이 생겼고, 나는 팥떡이가 편해지는 지점을 조금 더 배웠으니까, 텐트 안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작년처럼 급하게 붙잡는 느낌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 같다.

마당이 있는 독채 숙소에도 가보고 싶은데, 가능하면 강원도 어딘가였으면 좋겠다. 너무 도시 같지 않고, 공기가 조금 차갑고, 문을 열면 팥떡이가 바로 바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 내가 생각하는 건 대단한 여행이라기보다, 산책이 끝난 뒤에도 팥떡이가 바로 실내로 들어오지 않아도 되는 하루다.

팥떡이는 산책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려고 하면 늘 조금 아쉬워한다. 정확히는 가기 싫어한다. 바깥이 좋은 거다. 냄새도 있고, 바람도 있고, 지나가는 소리도 있고, 땅도 있고, 자기가 더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군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결국 집에 들어와야 한다. 산책은 끝나야 하고, 나는 출근을 해야 하거나 밥을 먹어야 하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마당 있는 곳에 가서 원 없이 밖에 둬보고 싶다. 리드줄에 맞춰 계속 이동하는 산책 말고, 그냥 바깥에 있어도 되는 시간. 팥떡이가 자기 속도로 냄새 맡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바람을 보고, 소리를 듣고, 내가 부르면 한 번 보고,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는 시간. 그런 시간을 주고 싶다.

날이 더 더워지면 계곡에도 가려고 한다. 작년 여름에 팥떡이가 계곡에서 놀던 모습이 기억난다. 시원한 물에 들어가고, 물가에서 냄새를 맡고, 몸이 젖은 채로 돌아다니던 모습. 팥떡이가 물을 엄청 능숙하게 즐기는 개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팥떡이는 물가에서 오래 머물렀다. 더운 날 시원한 물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있었고, 올해도 그런 시간을 같이 갖고 싶다. 팥떡이가 계곡에서 놀고, 나는 그걸 보고, 사진을 찍고, 나중에 돌아와서 그 시간을 다시 보는 것까지. 그런 과정이 오래 남는다.

밥 먹는 일도 다시 크게 만들고 싶다

요즘은 식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있다.

사료를 바꿨다. 처음에는 오리젠, 아카나에서 나오는 퍼피 사료로 시작했고, 그 이후 성견 사료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어류 쪽으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오리젠 식스피쉬로 가봤다. 내가 평소에 오리나 다른 육류 생식을 꽤 주는 편이라, 사료까지 같은 방향으로만 가져가기보다 생선 기반으로 두면 전체 구성이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메가3 쪽도 같이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순환급여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파미나, 카르나4 쪽도 후보로 두고 천천히 돌려볼까 한다. 제품 이름을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팥떡이 몸이 어떤 구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후보식단에서 맡길 역할기대하는 점판단 기준
오리젠 식스피쉬어류 기반의 시작점육류 생식과 겹치지 않는 방향, 오메가3변, 기호성, 체중, 움직임, 관절 쪽 컨디션
파미나순환 후보다른 단백질/탄수화물 구성원재료 구성과 팥떡이 반응
카르나4다른 가공 방식 후보사료 질감과 구성의 변화비용, 수급, 주식으로 유지 가능한지
기존 사료들비교 기준이전 반응과의 차이 확인익숙함 때문에 변화를 놓치지 않는지

앞으로는 변 상태, 먹는 속도, 식후 컨디션, 체중, 움직임, 관절 쪽 컨디션, 그리고 내가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를 같이 보려고 한다. 제품 이름만 바꾸는 건 별 의미가 없고, 결국 팥떡이 몸이 어떻게 받는지 봐야 한다.

사료를 고르는 일과 먹는 방식을 다시 잡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사료는 무엇이 몸에 들어가는지에 관한 일이고, 급여 방식은 팥떡이가 그 먹이를 어떤 과정으로 얻는지에 관한 일이다. 나는 원래도 후자 쪽을 중요하게 봤는데, 팥떡이가 크면서 그걸 예전만큼 유지하지 못했다.

팥떡이가 어릴 때는 거의 핸드피딩을 했다. 밥그릇에 담아두는 일이 별로 없었고, 나는 손으로 사료를 줬다. 팥떡이는 내 손에서 밥을 먹었고, 그 시간은 그냥 급여가 아니라 상호작용이었다. 눈을 보고, 기다리고, 작은 행동을 하고, 보상을 받고, 다시 이어지는 시간. 그때는 그게 꽤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팥떡이가 크면서 식욕이 조금 줄었고, 손으로 주는 밥에 예전만큼 반응하지 않는 시기가 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방식을 덜 하게 됐다. 그냥 그릇으로 주면 되겠지. 잘 먹으면 됐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꽤 큰 걸 놓고 있었던 것 같다.

밥을 먹는 건 아주 기본적인 일이다. 그래서 쉽게 양과 성분 쪽으로만 보게 된다. 하루에 먹어야 할 양을 먹었는지, 사료를 바꿨는지, 변이 괜찮은지, 그런 것만 보게 된다.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밥에는 몸에 들어가는 영양 말고도 하루의 리듬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팥떡이에게 먹이를 먹는 일은 하루에서 가장 큰 보상 중 하나이고, 그걸 어떻게 만나게 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먹이를 먹는 일이 다시 팥떡이 하루에서 조금 더 큰 일이었으면 한다.

사료가 그냥 그릇에 담겨 금방 사라지는 것과, 내 손에서 나오고, 짧은 기다림과 눈맞춤과 작은 움직임을 거쳐 나오는 것은 다르다. 같은 사료라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개는 자기가 뭔가를 해서 얻은 것에 꽤 크게 반응한다. 그냥 생긴 것과, 내가 참여해서 얻은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밥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재밌는 활동이 될 수 있고, 하루의 구조가 될 수 있다. 산책 전 체크인, 집 안에서 찾기, 매트 위에서 기다리기, 이름 반응, 짧은 위치 이동, 아주 작은 쉐이핑. 이런 것들이 사료와 연결되면 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루 곳곳에 흩어진 작은 성공이 된다.

내가 이걸 예전에 알았는데도 놓쳤다는 게 조금 아쉽다. 하지만 다시 하면 된다. 예전처럼 전량을 손으로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팥떡이는 그때와 다르고, 나도 그때와 다르니까. 대신 일부라도 다시 살려보고 싶다. 하루 사료의 일부를 손으로 주고, 일부는 찾게 하고, 일부는 산책 전후의 작은 확인에 쓰고, 어떤 날은 그냥 그릇으로 주더라도 적어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

밥을 챙긴다는 건 양을 맞춘 뒤에도 이어지는 일이었다. 팥떡이가 오늘 먹이를 어떤 과정으로 얻었는지까지 보는 일이었다.

장난감도 늘 열려 있으면 조금 달라진다

장난감도 비슷하다.

나는 장난감을 항상 바닥에 늘어놓지는 않는다. 이건 그래도 비교적 잘하고 있는 것 같다. 팥떡이가 언제든 마음대로 물고 놀 수 있게 두는 장난감도 있지만, 중요한 장난감은 보통 나와 같이 노는 시간에 나온다.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장난감이 늘 바닥에 있으면 그냥 배경이 되고, 나와 연결된 놀이의 신호라기보다 언제든 있는 물건처럼 흐려진다.

나와 노는 시간에만 나오는 장난감은 조금 다르다. 그 장난감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시간이 된다. 내가 꺼내고, 팥떡이가 반응하고, 같이 당기고, 놓고, 다시 시작하고, 성공하고, 끝나는 흐름이 생긴다. 개한테는 물건 자체만큼이나 그 물건이 어떤 관계 안에서 나오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먹이도 장난감도 결국 비슷한 문제일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너무 아무렇게나 열어두면 오히려 그 좋은 것들이 흐려질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아끼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적당히 닫혀 있다가, 적당한 순간에 열리고, 그 시간이 나와 연결되는 것. 그게 팥떡이에게 더 또렷하게 남을 수 있다.

여기서도 내가 배워야 할 건 균형이다. 밥을 너무 훈련처럼만 만들지 않는 것, 장난감을 너무 규칙처럼만 쓰지 않는 것. 좋은 건 좋아야 한다. 팥떡이가 신나야 하고, 기대해야 하고, 그 시간을 즐겨야 한다. 그래도 그 좋은 것들이 그냥 흩어져 사라지지 않게, 내가 조금 더 의식해서 다루고 싶은 것이다.

멀리 나가지 않은 날에도 이런 시간은 남는다. 밥을 조금 더 재미있게 먹은 날, 장난감을 나와 같이 신나게 물고 논 날, 산책 후에도 아쉬움이 조금 덜 남은 날. 그런 식으로 남는 시간이 있다.

가호라는 새 친구

최근에는 가호라는 개를 만났다.

팥떡이는 타견반응이 생긴 뒤로 다른 개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어졌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흑봉이라는 친구에게만 열려 있는 편이다. 다르게 말하면, 흑봉이랑 있을 때만 보호자인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다. 흑봉이는 팥떡이에게 익숙한 개고, 나도 그 관계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

가호는 조금 달랐다. 6살인 가호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 팥떡이는 생각보다 크게 무너지지 않았고, 나도 흑봉이를 만날 때처럼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계속 급하게 거리를 계산하고 다음 상황을 미리 막아야 하는 쪽으로만 끌려가지는 않았다. 같이 뛰어놀고 서로를 단번에 받아들인 관계라기보다, 같은 공간 안에서 각자 쉬고 움직이고 다시 멈출 수 있었다는 쪽에 가까웠고, 나는 그 조용한 유지 쪽을 계속 보게 됐다. 크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그게 내게는 꽤 컸다.

타견반응이 있는 개와 살다 보면, 다른 개를 만나는 일이 늘 큰 사건이 된다. 마주치기 전부터 내가 긴장하고, 거리를 계산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빠질 길을 보고, 팥떡이가 어느 선에서 아직 생각할 수 있는지 살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개와 같은 공간에 있는 일이 너무 쉽게 시험처럼 느껴진다. 잘 지나가야 하고, 터지지 않아야 하고, 내가 실수하지 않아야 하는 시간.

가호와의 시간은 아직 조심스럽다. 일부 특정 상황이나 행동에서는 팥떡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있고, 나도 그럴 때마다 거리와 자세와 다음 행동을 다시 보게 된다. 그래도 그 안에서 한 가지는 남았다. 팥떡이가 흑봉이 말고도 어떤 개와 같은 공간에서 크게 무너지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 오래 남았다.

좋은 친구라는 말도 꼭 같이 뛰어노는 쪽으로만 갈 필요는 없을지 모르겠다. 어떤 개에게는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친구가 더 중요할 수도 있고, 팥떡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도 어쩌면 그런 쪽일 수 있다. 흥분을 올리는 친구보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괜찮은 친구. 서로를 크게 건드리지 않고, 각자 쉬면서도 같이 있는 시간이 가능한 관계.

올해 새로 가까워진 사람들을 떠올려도, 나는 비슷한 쪽을 더 많이 보게 됐다. 많이 말하고 자주 만나는 것보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덜 긴장해도 되는지, 서로를 계속 달래거나 설득하거나 맞춰주느라 지치지 않는지, 각자 자기 상태로 있으면서도 옆에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지 않은지 같은 것들. 그런 쪽의 가까움이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가호와 팥떡이가 그런 관계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너무 빨리 기대하고 싶지는 않다. 팥떡이의 속도가 있고, 가호의 속도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친구와 엄청나게 잘 논 날만 오래 남는 건 아닐 테니까, 지금의 팥떡이에게는 같은 공간에서 별일 없이 쉬었던 날이 더 필요한 경험일 수도 있다.

사진으로 잘 남지 않는 것들

올해를 생각하면 사진첩이 먼저 조용하다.

작년에는 계곡도 많이 갔고, 놀이터도 거의 매일 갔고, 백패킹도 다녀왔고, 설악산은 못 갔더라도 산에 가는 시간 자체는 더 자주 있었다. 올해는 그런 일이 적었다. 사진으로 남길 일이 줄어들면 그 시기가 조금 덜 찬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나는 원래 그런 식으로 시간을 세는 데 익숙했던 것 같다. 어디를 갔는지,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돌아와서 다시 볼 사진이 있는지. 계곡이나 백패킹이나 설악산처럼 몸을 멀리 데려가는 일들은 좋았고, 그건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긴 산행은 나한테 이상한 방식으로 필요했다. 몸이 힘들어질수록 마음이 단순해지고, 머릿속에서 계속 붙잡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결국에는 발을 어디에 둘지와 물을 언제 마실지 같은 것만 남는 시간. 나는 그런 식으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일을 오래 좋아했다.

그런데 팥떡이와 사는 생활은 나를 자꾸 다른 방식으로 붙잡는다. 멀리 가서 마음을 비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밥을 줘야 하고, 산책을 나가야 하고, 리드줄을 잡은 채 조금 더 있고 싶어하는 팥떡이를 기다려야 하고,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는 팥떡이를 결국 다시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혼자 뛰러 나가고 싶다가도 오늘은 산책 중간에 조금씩 같이 뛰는 게 나을까 생각하게 되고, 백패킹 장비를 떠올리면서도 텐트 안에서 팥떡이가 작년보다 얼마나 편하게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런 건 사진으로 잘 남지 않는다. 남겨도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밥을 앞에 두고 잠깐 기다리는 일, 장난감이 나오는 시간을 다시 또렷하게 만드는 일, 가호와 같은 공간에서 크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 산책이 끝난 뒤 집 앞에서 조금 더 서 있는 일. 그런 것들은 사진첩에서 한눈에 보이는 종류의 일은 아닌데, 막상 하루가 끝나고 나면 그런 쪽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내가 오늘 어디를 다녀왔는지보다, 팥떡이와 내가 얼마나 덜 엇갈렸는지, 내가 얼마나 덜 급하게 굴었는지, 팥떡이가 어느 순간에 마음을 놓았는지 같은 것들.

예전의 나는 여행을 기다리고, 산에 갈 날을 기다리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을 기다렸다. 그런 기다림이 나를 버티게 해준 때도 분명 있었다. 지금도 그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설악산에 가고 싶고, 날이 더 더워지면 계곡에도 가려고 하고, 강원도 어딘가 마당이 있는 숙소도 계속 찾아볼 것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런 날이 오기 전의 시간을 조금 비워둔 채로 살았다면, 요즘은 그 사이에 있는 날들도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별일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던 시간 안에 팥떡이의 식사, 산책, 기다림, 반응, 새로운 친구, 그리고 내가 혼자 하던 것들을 다시 조정하는 마음이 계속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날은 생각보다 별일이 없었다고 적어두고도 조금 망설이게 된다. 별일이 없었다기보다, 내가 별일이라고 세던 기준이 좁았던 것 같다. 올해는 그 기준이 조금 흔들렸다. 멀리 다녀온 날만 오래 남는 게 아니라, 팥떡이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해서 내가 잠깐 더 기다린 날, 밥 먹는 일을 다시 크게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 날, 혼자 뛰러 나가려다가 같이 조금 더 걷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날, 새로운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동안에도 팥떡이와 내 생활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던 날. 그런 날들이 자꾸 남는다.

아직은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올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날들이 그냥 지나간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