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어려워진 뒤에야 알게 된 것들
여행은 내게 꽤 큰 일이었다
개를 키우기 전에는 매년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게 내게 꽤 큰 일이었다. 그냥 쉬러 가는 정도가 아니라, 말하자면 현실도피에 가까웠다. 나는 대체로 그 해의 대부분을 1년에 한 번 있을 여행을 기다리며 버티는 식으로 살았던 것 같다. 실제로 떠나는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이나 이주 정도였는데, 그 시간이 있으면 나머지 시간이 조금 견딜 만해졌다. 여행을 가지 않는 동안에도 어디로 갈지, 가면 뭘 할지, 뭘 먹고 어떤 장면을 보게 될지 계획 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어떤 해에는 여행만큼이나 여행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팥떡이를 임시 보호하다가 결국 내가 키우게 됐을 때, 다른 건 딱히 아쉽거나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생활 패턴이 바뀌는 것도 괜찮았고, 돈이 더 드는 것도 감수할 만했고, 하루의 구조가 달라지는 것도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제 여행을 다니기 쉽지 않아졌다는 게 한동안은 꽤 크게 남았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가장 큰 개인적인 아쉬움일지 모른다.
여행이 어려워진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팥떡이를 두고 어디를 간다는 건 그냥 "누가 봐주면 되지"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는 호텔 같은 곳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무엇보다 팥떡이의 성격상 그런 환경이 정말 괜찮을지도 잘 모르겠다. 다른 개들이 많은 공간이 팥떡이한테 좋은지 안 좋은지도 확신이 없다. 예전에는 잠깐, 다른 개들이랑 같이 놀 수 있으면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팥떡이는 다른 개들을 보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막상 마주치면 공격성이라고 불러야 할 반응이 나올 때가 있다. 어릴 때는 다른 개만 보면 다 좋다고 달려드는 쪽이었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몇 번 다른 개들과 싸운 적이 있었고, 한 번은 다른 개가 먼저 공격했는데 주변에 있던 개들까지 같이 달려들어서 팥떡이를 공격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다른 개를 보면 놀고 싶어하고, 격렬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건 맞는데, 막상 가까이 가면 첫 대면부터 경계가 있고 공격적으로 반응할 때도 있다. 뭔가 양가감정처럼 보일 때가 있다. 좋아하는 것도 맞고, 동시에 밀어내는 것도 맞는 것 같다.
가끔 그런 팥떡이가 좀 안쓰럽다.
맡길 수 없다는 건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때 팥떡이는 처음으로 나한테 왔다
팥떡이는 평소에는 무던하다. 표정도 늘 좀 덤덤하고, 웬만한 일에 크게 놀라는 편도 아니고, 겉으로 보면 겁이 많은 개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놀이터 일은 좀 달랐다. 나도 뛰어들어가서 말리고 그랬는데, 그때의 팥떡이는 그냥 좀 안쓰러웠다. 원래 놀이터에 있으면 나한테 잘 안 오는 애였는데, 그 일 직후에는 나한테 와서 나를 올려다보고 내 옆에 붙어 있었다. 그걸 보면서 그래도 자기가 아는 사람이 나니까, 그래도 나한테는 좀 의지하나 싶었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팥떡이가 평소에 강한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원래 그런 결의 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구나 다 무너질 때가 있고, 약해질 때가 있고, 감정적으로 기대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건 안다. 팥떡이도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것 같고, 그게 이상하게 나랑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항상 강한 듯 행동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굴고, 겉으로는 잘 버티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점. 종종 다리 건너는 걸 무서워하기도 하고, 천둥 치는 걸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혼자 어디론가 가서 덜덜 떨고 있는 걸 보면 더 그렇다. 그것도 나랑 닮았다. 누가 옆에 있어도 혼자 견디는 쪽으로 먼저 가는 것.
맡긴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디 맡긴다는 문제가 더 단순하지가 않다. 다음으로 생각했던 건 내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훈련사들 중에 보딩 프로그램을 하는 곳이 있어서, 그쪽에 맡기는 방법이었다. 그분 집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훈련도 하고, 그냥 그 환경 안에서 좋은 생활을 경험하고 배우는 프로그램이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팥떡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실제로 잘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분 집의 개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미리 봐야 하고,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팥떡이가 거기서 편할지는 또 다른 얘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싸다. 솔직히 그것도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다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결국 가장 단순한 방식이다. 팥떡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있게 하는 것. 그게 사실 제일 나은 방식일 수 있다. 문제는 그게 가능한 사람이 내 주변에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가끔 산책을 맡길 수는 있어도 완전히 신뢰하진 못해서 그럴 때마다 걱정이 많이 되고 신경도 많이 쓰인다. 내 성격상 그냥 부탁만 하고 잘 해주길 바라는 식으로는 잘 못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통제하고 싶고, 필요한 걸 분명하게 요구하고 싶고, 내가 안심할 수 있는 기준을 맞추고 싶은데, 실제 관계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부탁하는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굴 수는 없고, 돈을 주고 맡기는 관계라고 해도 결국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한동안은 여행에 대해 거의 포기하는 쪽으로 생각했다. 그냥 나 혼자 여러 가지로 합리화하면서 이제 여행은 그만 가도 된다고 계속 말해왔다. 어차피 지금까지도 많이 다녔고, 이제는 안 가도 된다고. 예전에는 매년 현실도피처럼 여행을 가면서 그 일주일, 이주일을 위해 나머지 시간을 버텨왔는데, 지금은 개가 있어서 오히려 현실을 갖게 된 거라고. 더 이상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잠깐의 탈출만 바라보며 버티지 않고, 일상 자체를 살게 된 거라고. 그 말은 사실이기도 하다. 팥떡이랑 같이 살게 되면서 느낀 게 많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키우게 되면 희생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개를 키우게 돼서 하루에 한 번만 웃을 일이 생긴다면 이미 성공한 거래라고. 그 정도면 남는 장사라고.
그래도 여행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
같이 가는 여행은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언젠가는 팥떡이랑 자유롭게 여행을 가고 싶어서, 같이 갈 수 있는 미국 여행을 계획해보기도 했다. 사실 이건 팥떡이가 오기 한참 전부터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여행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 계획을 팥떡이와 함께하는 것을 생각해본 것이다. 이 경우에 문제는 몇 가지가 있다. 장시간 비행이 팥떡이한테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점, 낯선 환경이 정말 좋은 경험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아무리 그렇게 좋은 데를 같이 간다 한들 그게 정말 팥떡이한테도 좋은 일일지는 모르겠다는 점.
사실 이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콜로라도의 대자연에 가나 그냥 나랑 같이 강원도에 가나, 팥떡이 입장에서는 그게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중요한 건 어디냐가 아니라 나랑 같이 있느냐, 그리고 자기가 편하냐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행복해지는 것도 팥떡이한테는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다. 팥떡이뿐 아니라 나 역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야 주변에도 좋다는 믿음이 있다. 그냥 같이 가서 한 달 정도 현실의 모든 걸 다 떠나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걸 멋진 영상으로 기록해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건 팥떡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기록은 나와 팥떡이의 행복한 코어를 만드는 일이다
카메라로 기록하는 일은 나한테 정말 큰 의미가 있다. 대단한 철학이 있다기보다, 그냥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붙잡아두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내게 기록은 그 시간을 직접 계획하고, 직접 만들고, 직접 남겨서 결국 나와 팥떡이의 행복한 코어로 만들어두는 작업에 더 가깝다. 그 모든 과정이 좋다. 어디를 갈지 정하고,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걸 카메라로 기록하고, 돌아와서 정리하고, 나중에 다시 꺼내보는 것까지. 그 과정과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맞아떨어질 때, 그때가 정말 좋다.
그걸 반복하면 나와 팥떡이는 정말로 가진 게 많아지는 것 같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진다는 뜻에 가깝다. 가진 게 많지 않은 내 삶에서, 언젠가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가 오더라도, 혹은 그냥 내가 한때 너무 행복했던 순간이 그리워질 때가 오더라도,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 크다. 컴퓨터 속에 잘 보관돼 있는 원본 파일들이 그래서 든든하다. 여행은 단순히 떠나는 일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만들고, 붙잡아두고, 나중에도 꺼내볼 수 있게 해두는 일이었다.
그래서 긴 여행이 아니어도, 그냥 나 혼자 가까운 곳이라면 잠깐씩 다녀오는 것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올해는 그래도 어딘가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잠깐이라도.
지금 이 순간도 이미 꽤 좋다
내 폰 알람은 5시에 한 번 울리고, 5시 30분에도 울리고, 6시 30분에도 울린다. 산책 중에 내 주머니 속 폰에서 알람이 울리면 팥떡이가 갑자기 엄청 신나한다. 엉덩이를 흔들고, 소리까지 내면서 좋아한다. 처음엔 왜 그러나 싶어서 일부러 그 소리를 다시 재생해본 적도 있는데, 정말 똑같이 신나했다. 생각해보니 팥떡이는 평소에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다가 내 폰 알람이 울리면 내가 일어나는 걸 늘 봐왔고, 그래서 그 소리가 자기한테는 그냥 하루가 시작되는 좋은 소리가 된 것 같았다. 그게 너무 귀여웠다.
나는 팥떡이가 너무 귀엽다. 가끔은 안쓰럽고, 가끔은 좀 마음이 쓰이고, 가끔은 얘를 두고 어딘가 떠나는 일을 내가 앞으로도 쉽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늘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팥떡이랑 함께할 남은 시간들도 너무 기대가 된다. 여행을 가든 안 가든, 멀리 가든 가까이 가든, 결국 내가 붙잡고 싶은 건 그런 쪽인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주머니 속 알람 소리에 신나하는 뒷모습 같은 것, 내가 일어나는 소리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같은 것, 그런 사소한 장면들.
생각해보면 나는 예전에는 잠깐의 탈출을 기다리며 나머지 시간을 버텼고, 지금은 그 대신 현실 안에서 좋아하게 된 장면들이 생겼다. 그게 여행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삶이 된 건 맞다. 그래서 아직도 아쉽고 아직도 고민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행한 쪽으로만 기울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반대에 더 가깝다. 나는 아마 여행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고, 팥떡이를 두고 떠나는 문제도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있다. 팥떡이가 내 알람 소리에 엉덩이를 흔드는 아침이 그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