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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팥팥© 2026 狗狗狗

2026. 4. 5. · 32 min read

조용하다고 다 편안한 건 아니었다

팥떡이와 살면서, 나는 많이 움직인 하루와 잘 쉰 하루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

팥떡이와 살다 보니, 개의 하루를 바라보는 기준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잘 쉰다는 것과 조용하다는 것, 많이 움직인다는 것과 충분히 만족했다는 것, 지루하다는 것과 편안하지 않다는 것은 생각보다 자주 서로 헷갈렸다. 나 역시 한동안은 그걸 같은 말처럼 여겼다. 그래서 이 글은 "개는 하루에 얼마나 뛰어야 하나" 같은 질문에 정답을 내려놓기보다, 팥떡이와 함께 살며 내가 개의 하루를 다시 보게 된 과정을 적어보는 쪽에 가깝다.

조용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볼 때도 나는 자주 헷갈린다

팥떡이가 집 안에서 조용히 누워 쉬는 모습을 보면, 어떤 날은 안심이 된다.
아, 오늘은 그래도 좀 편안한가 보다. 이제는 집이 자기한테 안전한 공간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이게 정말 편안한 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 일도 없어서 가만히 있는 걸까. 오늘 하루가 너무 비어 있어서, 그냥 멈춰 있는 쪽이 더 가까운 건 아닐까. 개는 원래 많은 시간을 자고 쉬는 동물이 맞는데도, 막상 집에서 조용한 모습을 보면 나는 자꾸 걱정부터 하게 된다. 덜 움직인 건 아닌지, 덜 놀아준 건 아닌지, 신나게 뛰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건 아닌지.

아마 이건 팥떡이 문제만은 아닐 거다.
나는 원래도 가만히 있는 상태를 아주 편하게 넘기는 사람이 아니다. 일이 없으면 오히려 뭔가 놓친 건 없는지 먼저 확인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러니까 팥떡이가 조용히 누워 있는 장면 앞에서도, 나는 안심과 걱정을 번갈아 가며 본다. 이 아이가 지금 진짜 편안한 건지,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가 너무 비어 있었던 건지. 이번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너무 어려서, 하루에 8번에서 10번씩 산책을 나갔다

팥떡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는 아직 너무 어려서 산책을 정말 자주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에 8번에서 10번쯤은 나갔던 것 같다. 쉬가 마렵다고 히융히융대기도 했고, 나는 그 신호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러니까 그냥 계속 나갔다. 그때의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너무 어리니까, 신호를 보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가는 거라고.

그 시기의 나는 팥떡이를 "잘 돌본다"는 말을 거의 바로 반응해 주는 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히융하면 나가고, 움직이면 따라가고, 뭔가 요구하면 일단 해주고. 물론 그때는 그게 꽤 필요하기도 했다. 아직 너무 어렸고, 루틴도 불안정했고, 배변도 생활도 전부 흔들리던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서서히 다른 질문을 하게 됐다. 산책 횟수가 많다고 해서 진짜로 안정되는 건가. 자주 나간다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같은 말인가. 그리고 더 나중에는, 정말 잘 쉬는 개는 어떤 흐름 안에서 사는 걸까 하는 질문까지 가게 됐다.

어느 정도 크고 나서부터는 하루 3번 정도 나가는 루틴으로 자리가 잡혔다.
예전과 비교하면 훨씬 안정된 흐름이다. 팥떡이도 이제 어릴 때처럼 배변 때문에 계속 히융대는 시기는 지났고, 나도 예전처럼 하루를 잘게 잘라 산책으로만 채우진 않는다. 그런데 안정됐다는 말이 곧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다른 종류의 아쉬움을 더 자주 느낀다.

리쉬 산책만으로는 늘 조금 아쉽다

평소 산책은 리쉬를 하고 나간다.
그건 당연한 일이고, 안전을 생각하면 필요한 방식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마음껏 뛰어놀지는 못하고, 숨이 찰 만큼 활동하지는 못하고, 어떤 날은 몸이 가진 에너지와 산책의 구조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반려견 놀이터에 갈 수 있을 때는 가서 뛰어놀게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런 날들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몸을 크게 쓰고, 속도를 올리고, 다른 속도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있으니까.

문제는 평소에는 늘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다.
시간이 없을 때가 더 많고, 여건이 안 맞을 때가 더 많고, 결국 대부분의 날은 내가 만들어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루를 설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걸 거의 "최대한 체력을 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뛰게 해줄 수 없으면 집에서라도 최대한 머리를 쓰게 해야 하고, 몸을 쓰게 해야 하고, 피곤해지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생각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고는 지금도 말하지 않겠다. 분명 활동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때의 내가 많이 움직인 하루잘 쉰 하루를 거의 같은 말처럼 생각했다는 데 있다.

실제로는 둘이 꽤 다른 문제였다.
요즘 풍부화나 훈련 쪽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비슷하다. 개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소모만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안전감, 선택할 수 있는 여지, 냄새 맡기와 탐색, 그리고 그다음에 다시 가라앉을 수 있는 흐름이라는 것. 나는 처음엔 그 말을 머리로만 이해했다. 그러다 팥떡이와 살면서 조금씩 보게 됐다. 많이 움직인 뒤에도 아직 에너지가 남아서 더 소모가 필요한 날이 있고, 크게 뛰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만족한 얼굴로 쉬는 날이 있다는 걸.

물건을 두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짧은 훈련은 생각보다 다른 피로를 만든다

집에서 많이 하게 된 것 중 하나는 물건을 두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짧은 훈련이었다.
바닥에 몇 가지 물건을 두고 내가 먼저 시키지 않는다. 그냥 기다린다. 팥떡이가 우연히 특정 물건을 건드리면 소리로 표시를 해주고 보상을 준다. 처음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성공했다고 해도 처음엔 팥떡이도 자기가 왜 보상을 받았는지, 어떤 행동 때문에 보상이 나온 건지 정확히 모른다. 근데 그걸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연결을 이해하는 때가 온다. 아, 내가 이걸 건드리니까 보상이 나오는구나. 그때부터는 스스로 그 물건을 더 자주, 더 또렷하게 건드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흐름이 좋았다.
좋았던 이유가 단순히 머리를 쓰니까 피곤해져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팥떡이가 세상 안에서 어떤 규칙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연히 한 행동이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반복되면서 하나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흐름. 그건 그냥 시간을 때우는 놀이가 아니라, 개가 "내가 뭘 하면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다시 배우는 시간에 가까워 보였다.

행동을 잘게 나눠서 보상해 주는 이런 방식은 실제 훈련 이론에서도 중요한 축이다.
개를 억지로 밀어붙이기보다, 스스로 시도하고 성공하고 다시 시도하게 만드는 쪽이 더 적극적이고 안정적인 학습을 만든다는 관점이다. 풍부화 쪽에서도 이런 문제 해결 경험은 단순 자극이 아니라, "내가 해냈다"는 감각과 오래 유지될 수 있는 집중을 만드는 요소로 설명된다. 어떤 날은 그런 짧은 세션 하나가, 생각보다 더 또렷하게 팥떡이를 붙잡아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느낌보다, 참여했고 해냈다는 느낌이 더 가까워 보였다.

그 차이를 본 뒤부터는 나는 머리를 쓰는 활동을 체력 소모의 대체재처럼만 보지 않게 됐다.
오히려 그건 상태를 바꾸는 도구에 가까웠다. 뛰어서 헐떡이게 만드는 피로와, 스스로 문제를 풀고 이해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생기는 피로는 결이 달랐다. 그리고 팥떡이에게는 그 두 종류가 둘 다 필요해 보였다.

혼자 있어야 하는 날에는, 냄새를 따라 열고 밀고 꺼내먹는 장난감이 큰 역할을 했다

내가 장시간 외출해야 할 때는 퍼즐 장난감도 꽤 자주 쓴다.
작은 칸들이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고, 어떤 칸에는 덮개가 얹혀 있고, 안쪽에 간식을 숨길 수 있는 구조다. 그 안에 잘게 자른 간식을 여기저기 넣어두면 팥떡이가 냄새를 맡고, 코로 밀고, 칸을 움직이고, 결국 꺼내먹는다. 처음에는 덮개를 잘 못 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몇 번은 그냥 냄새만 맡다가 멈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천천히 계속하다 보니까 이젠 입을 써서 덮개도 열고, 안의 간식도 잘 꺼내먹는다.

나는 그 집중도가 꽤 인상적이었다.
몸을 크게 쓰는 활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시간도 아니다. 냄새를 따라가고, 구조를 이해하고, 앞발이 아니라 코와 입으로 문제를 풀고, 성공하면 바로 보상이 나오는 시간. 후각은 원래 개한테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각이고, 실제로 냄새를 쓰는 활동은 짧은 시간으로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집중을 모아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날은 뛰는 것보다 이런 종류의 집중이 더 또렷하게 팥떡이를 붙잡아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건 혼자 있는 시간을 그냥 견디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 혼자 있는 시간 안에도 개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넣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개가 모든 시간을 사람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혼자 남는 시간을 어떻게 덜 텅 비게 만들 것인가" 쪽에 가까워진다. 이 지점에서 나는 조금씩 배우게 됐다. 개한테 필요한 게 무조건 더 큰 자극이나 더 긴 산책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적절한 난이도의 참여, 해결, 성공,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정리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 쉽게 말하면, 무조건 더 지치게 하는 게 아니라 잘 참여하게 하고, 그다음엔 다시 편안해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가까운 방향일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도 어떤 날은 팥떡이가 와서 턱을 올리고, 히융히융 소리를 낸다

그런데 문제는 늘 여기서 다시 복잡해진다.
매일 같은 루틴으로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더라도, 어떤 날은 팥떡이가 너무 심심한지 내게 와서 히융히융 소리를 낸다. 턱을 계속 내 몸에 대고, 놀아달라고 소통하려고 한다. 심할 때는 날 보면서 짧게 왕 하고 짖는다. 그럴 때면 나는 바로 미안해진다. 오늘 하루가 너무 비어 있었나 싶고, 내가 뭔가 놓쳤나 싶고, 이 아이가 지금 나한테 보내는 신호를 너무 늦게 알아차린 건 아닌가 싶어진다.

그런데 또 동시에, 이상하게도 고맙다.
그렇게라도 나한테 말을 걸어줘서. 그냥 안으로만 말라붙는 게 아니라, 그래도 나를 향해 오고, 턱을 올리고, 소리를 내고, "지금 뭔가 필요하다"고 알려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관계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이 아이가 나와 같이 살고 있고, 내 쪽을 향해 소통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한다.

개의 몸짓을 다루는 책들을 보다 보면, 짖음이나 칭얼거림 이전에 이미 개는 굉장히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가 반복해서 나온다.
고개를 돌리고, 멈추고, 냄새를 맡고, 몸을 굳히고, 입을 핥고, 거리를 만들고, 다시 다가오고. 나는 예전엔 그런 것들을 잘 못 봤다. 그러다 보니 소리가 커진 뒤에야 "아, 얘가 지금 힘들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은 히융히융대는 소리나 짖음을 단순한 요구로만 읽지 않으려고 한다. 그 안에는 심심함도 있을 수 있고, 더 놀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고, 오늘 하루가 너무 비어 있었다는 신호도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내 상태를 같이 읽고 불안해진 걸 말하는 걸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걸 무조건 조용히 시키는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지금 어떤 상태에서 나한테 오는지 같이 보려는 태도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걸 완벽하게 읽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신호를 예전처럼 귀찮은 것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많이 움직였다고 해서 꼭 잘 쉰 건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팥떡이를 잘 쉬게 하는 일과 충분히 지치게 하는 일을 거의 같은 말처럼 생각했다.
많이 움직이면 잘 쉴 거라고, 힘을 많이 쓰면 안정될 거라고, 그래서 나는 늘 "더 뛰게 해야 하나", "더 산책해야 하나", "더 놀아줘야 하나" 쪽으로 먼저 생각이 갔다. 지금도 그 질문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분명 운동은 필요하고, 어떤 개에게는 몸을 크게 쓰는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 다른 걸 보게 됐다.
잘 쉰다는 건 단순히 피곤해서 멈춘 상태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 많이 뛰었다고 해서 곧바로 편안해지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크게 지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덜 만족한 하루였던 것도 아니라는 것. 어떤 날은 몸을 크게 쓰는 것보다 짧고 또렷한 참여, 문제 해결, 후각 쓰기, 짧은 확인, 그리고 그 뒤의 정리가 더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흥분을 다루는 훈련 책들을 보다 보면, 핵심은 늘 비슷하다.
개를 한껏 들뜨게 만든 뒤 털썩 쓰러지게 하는 게 아니라, 아직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서 움직이고, 그 상태를 무리 없이 지나가고, 다시 차분해질 수 있게 돕는 것. 실제로는 그게 훨씬 어렵지만, 아마 더 건강한 방향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배우고 있는 건 이거다. 개를 잘 쉬게 한다는 건 계속 자극을 넣는 일도 아니고, 무조건 체력을 바닥까지 빼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잘 참여하게 하고, 적절하게 움직이게 하고, 다시 편안해질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쪽에 더 가깝다. 편안함은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참여와 회복의 균형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는 팥떡이 상태만이 아니라, 내 상태도 같이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디선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키우는 개들은 엄청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그 말을 보고 괜히 오래 남았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늘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떠올리는 장면 속의 노인과 개는 대체로 서두르지 않았고, 과장되지 않았고, 공기 자체가 느렸다.

반대로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길에 사람이 많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산책할 때도 긴장을 잘 하고, 주변 자극을 빨리 흡수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팥떡이도 그걸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팥떡이도 갑자기 겁을 먹거나, 예민해지거나, 산책의 결이 달라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팥떡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타고난 성격, 진돗개 특유의 예민함, 사회화의 문제. 그런 식으로만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장면에 내 긴장도 같이 섞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한동안 팥떡이의 상태만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상태도 같이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어떻게 걷고 있는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길 위에서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팥떡이는 그걸 같이 살고 있었다.

그걸 본 뒤부터는 팥떡이의 산책과 쉼을 볼 때 내가 어떤 상태로 같이 있었는지도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
내가 급하게 걸은 날은 팥떡이도 숨이 더 가빴고, 내가 뭔가에 긴장해 있었던 날은 팥떡이도 집에 와서 자리를 잘 못 잡았다. 많이 움직였는데 잘 쉬지 못하는 날과, 크게 뛰지 않았는데 편안하게 늘어지는 날. 그 차이가 활동량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상태까지 들어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팥떡이를 잘 쉬게 해주는 일을 늘 새 퍼즐 장난감이나 더 긴 산책 쪽에서만 찾을 수는 없게 됐다.
어떤 날은 내가 먼저 덜 날카로워지는 게 팥떡이의 하루에 더 크게 들어갈 수도 있다. 이건 훈련의 문제라기보다, 같이 사는 방식의 문제에 더 가깝다.

타견반응을 보면서, 좋아하는 것과 편안하게 마주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팥떡이는 어렸을 때는 다른 개들을 정말 좋아했다.
잘 놀았고, 관심도 많았고, 그 시기의 팥떡이를 생각하면 "사회성이 없는 개"라고 말하는 건 전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크면서 반응이 달라졌다. 이제 산책 중에 다른 개를 보면 공격성을 보인다. 타견반응이 심해졌고, 그 문제는 나한테도 여전히 어렵다.

근데 이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게 됐다.
지금도 팥떡이는 다른 개를 싫어해서만 반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좋아하고, 놀고 싶어하고, 동시에 긴장하고, 기대하고, 좌절하고, 흥분하고, 그게 한꺼번에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걸 단순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다른 개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것과, 다른 개를 만나는 순간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지금 하고 있는 훈련은 아주 단순하다.
다른 개를 보면 간식을 먹는다. 아직은 그 정도다. 그리고 조금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이 방향 자체는 맞다고 본다. 다른 개라는 장면 위에 긴장만 겹쳐지는 게 아니라, 다른 감정이 같이 올라오게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걸 하면서 나도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가까이 가서 버티는 게 훈련이 아니라는 것, 너무 많은 걸 시키면 오히려 더 바빠질 수 있다는 것, 어떤 날은 그냥 거리를 두고 지나가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

이런 반응을 다루는 훈련에서는 늘 거리와 기준선을 중요하게 본다.
아직 생각할 수 있는 거리에서 시작하고, 자극을 본 뒤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필요하면 그냥 우회하거나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 지나가는 것. 나는 이 관점이 좋다. 훈련이란 이름으로 무조건 참게 하거나 버티게 하는 것보다, 아직 괜찮은 범위 안에서 작은 성공을 반복하는 쪽이 더 맞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타견반응을 "고쳐야 하는 문제 행동"으로만 보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팥떡이가 어떤 거리에서 아직 생각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흥분이 두려움으로 뒤집히는지, 내 긴장이 그 장면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같이 보려고 한다. 이건 느리고 답답한 과정이지만, 아마 지금의 우리한테는 이 속도가 더 맞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팥떡이를 더 지치게 해야 하는 개로만 보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팥떡이를 볼 때 예전처럼 "더 지치게 해야 하나"부터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아직도 그런 날이 있다. 오늘 활동이 부족한 건 아닌지, 뛰는 시간이 너무 적은 건 아닌지, 내가 시간을 못 내서 미안한 건 아닌지. 그런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그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안다.

팥떡이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 더 많은 자극일 수도 없고, 무조건 더 많은 운동일 수도 없다.
어떤 날은 몸을 크게 쓰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날은 후각과 문제 해결이 더 잘 맞고, 어떤 날은 짧고 또렷한 확인 몇 번이 하루 전체를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무엇보다도 내가 덜 날카롭고 덜 긴장한 상태로 같이 걷는 것이 제일 중요할 수도 있다. 편안함은 결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많은 작은 조건들이 맞물려서 만들어지는 상태에 더 가깝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팥떡이를 "더 지치게 해야 하는 개"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잘 참여하고, 충분히 만족하고, 다시 편안해질 수 있는 하루를 같이 만들어가는 개로 본다. 조용하다고 다 편안한 건 아니었고, 많이 움직였다고 다 만족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건 하루가 끝났을 때 팥떡이가 어떤 상태로 남아 있는지를 보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걸 배우는 중이다.